사람의 몸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이 이다지도 간사하다.
몸이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틀만에도 완벽하게 적응된다.
그러나 본능에 역행하도록 적응하고 싶을 때면, 아무리 원해도 쉽게 적응할 수 없다.
난 아마도, '음' 체질인데,
음인은 음기가 강한 밤에 정신이 또렷해지고 양기가 강한 아침에는 집중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내 생활 패턴은 그런 편이다.
모든 시험이 거의 아침에 치뤄지고,
난 사실 아침에 기분이 가장 좋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눈을 뜨는 시간대가 밤이라니.
특히나 9시가 넘고 자정을 넘겨가면서 내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고도의 지적 활동은 이 시간대에 이루어질 때가 많다.
아침 시간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이라,
시간표를 짤 때도 남들 다 피하는 1교시 수업들을 한 주 내내 배치하려 애쓰고,
방학때도 새벽에 영어학원에 등록해 적어도 '7시 기상'은 유지하려 하고,
막상 잠만 깨면 아침 시간을 누구보다도 신나게 보내곤 하는데..
어쨌든 그렇게 사는 것도 사실 본능에 역행하는 노력의 결과였던 거지.
이틀쯤, 밤에 신나게 공부하고 점심도 거를 만큼 늦게 일어났더니만,
여기에, 내 몸은 옳지- 하고, 즉각 재워뒀던 본능을 깨우고 만다.
어제 두 시쯤 몸을 침대에 기댔다.
그러나 아마 세 시쯤 잠들었을 것이다.
(요즈음 밤에 잡생각이 너무 많다. 나도 괴롭고 떨쳐내고 싶은데, ..)
8시 반에 일어나려 했는데, 8시 50분에 일어났다.
8시 15분부터 시끄럽게 울리도록 해 놓았던 알람 소리는 분명 내가 끈 것이었을텐데.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하품이 나왔다.
돌아와서 잠을 깨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결국 계속 밀어닥치는 아침잠에 항복했다.
..... 아침먹고, 자고, 점심 먹으러 간 셈.
그리고 이제, 겨우 정신이 맑아졌다.
고작 이틀을 본능에 맞춰줬다고,
내 몸은 '이제야 내 맘을 알아주냐'고 시위라도 하는 양,
제 장난감을 비로소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고작 이틀이었는데!!
...... 아, 간사해.
아침을 좋아하는 내 영혼과 밤을 좋아하는 내 몸이 타협하는 선을 찾아야겠지만,
어쨌든 문득, 내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은 지금 잠시 조용히 귀 기울여본다.
...... 알겠어, 알겠다고, 우리, 이야기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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