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2009. 7. 6. 23:11


기말고사 1번으로 제시되었던 문제와, 내 답안.
예외적으로 기말고사를 메일로 제출하는 형식이 취해졌지만,
당연히 그 문제의 수준은 녹록치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후배 학생증까지 빌려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반나절동안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했던 기억이;; 
이 과제를 하던 날 밤 기숙사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토론을 벌였다.





인지발달이론의 일반적 특징과는 다른 도덕성 발달이론의 독특한 성격을 제시하고,
 Kohlberg의 도덕성 발달단계의 초등학교 적용 한계점을 설명하시오.





  콜버그는 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에서, 도덕성이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단계적 계열을 따라 순서대로 발달해간다고 주장하였다. 콜버그의 이 이론은 인지발달이론의 일반적 특징인 '단계적 계열'로 설명한다는 점, 순서가 있다는 점 등을 따른다. 인간이 미리 정해진 최종 상태를 향해 나아가며, 인간은 그 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관점에도 부합한다. 인간의 도덕성도 목표 지향적이자 목적론적으로 발달하며, 발달단계들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달경향을 나타내고, 이 변화는 양적이기보다는 질적이다.


  이러한 유사점이 있음에도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특징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는데, 단계별 연령을 제시하지 않아 나이와 단계의 수준의 상관관계가 다른 이론보다 훨씬 적은 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인지발달은 특정 연령대에 도달하면 몸에 프로그램화된 정보를 따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도덕성의 경우는 다른 인지발달보다 이런 경향이 적다.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거치는 단계는 특히 4단계까지이고, 나이가 굉장히 많이 들어도 전인습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다른 인지발달이론의 '개인차' 수준을 넘어설 만큼 많다. 환경적 요소가 특히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5, 6단계는 특정 문화권의 가치를 담은 단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거치는'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발달단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완벽히 객관적인 사실을 판별하는 단계들이 아니라 가치지향적 성격을 띠는 단계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단계는 때로는 퇴행하기도 한다. 상위 단계로 발달이 일어나면 하위 단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 발달이론들의 단계와는 다른 점이다.


  '도덕성' 발달을 인지발달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 도덕성 사고 발달이 행동적 측면과 연결될 것이라는 전제로 연구된 것임도 콜버그 이론의 특징이다. 다른 인지발달이론은 연구 대상 자체를 연구하였지만, 콜버그의 이론은 연구 대상을 한정적으로 정의한 뒤 이것이 다른 요소와 기능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연구한 것이다.


  콜버그의 이론은 도덕적 사고 발달이 곧 양심의 행동적, 감정적 측면과 연결되므로 도덕적 판단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인지발달 이론을 도덕적 영역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의 개념과 연구 방법을 정립하는 과정은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탄생 배경과는 달랐다. 당시는 '도덕적' 추론에 대한 것이 과학적 연구 주제로 적절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콜버그는 '도덕성'의 개념을 '정의에 관한 추론능력'으로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행동보다 추론을 우선시하는 연구로 행동주의와 실증주의 전통을 파괴하였다. 따라서 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여러 한계를 갖는다. 특히 이 도덕성 발달단계를 초등학교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계가 발생한다.


  첫째,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행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덕성의 인지발달이론은 도덕적 행위보다 도덕 관련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사고능력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바른 판단 능력이 도덕적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에서 도덕 교육을 할 때 콜버그의 이론을 고려한다면 이런 '판단'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게 되고, 학생들은 '도덕성'이 아닌 '도덕적 판단 능력'만 발달시키게 될 것이다. 대부분 전인습 수준에 머무르는 초등학생들을 고려하면, 이런 도덕 교육이 성인기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둘째, 그의 이론이 말하는 도덕성은 '개인의 권리와 공정성'이라는 도덕성의 일부 측면만을 반영하기에 교육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성차별적 요소를 포함할 우려가 있다. Gilligan이 초등학령기 아동이 포함된 6-18세 소녀들이 소년과는 달리 공정성 보다는 이타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고 밝힌 바가 있는 것처럼, 도덕성은 콜버그의 이론에서 제시되는 단계만으로 측정될 수 없다.


  셋째, 초등학생들은 콜버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능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이론에서처럼 자기중심적 반응, 혹은 강한 힘에 대한 복종으로 그렇게 제한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데이먼, 아이젠버그, 호프만 등의 연구가 이런 의견을 타진한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공감능력이 아주 어린 아기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는 등, 그의 이론을 초등학교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내용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아이젠버그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문화적 특성이나 순간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발달하지도 않고 예측 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엄격하고 절대적인 단계를 가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6. 22:57

 


아동발달과 교육


아이의 사생활 1부 '남과 여'를 시청하고








 

  지난 방학 때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한번 보았던 것이기 때문에 다시 보면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보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방학에 시청했을 때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지만, 2학년 1학기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본 '남과 여' 다큐멘터리는 또 다른 생각거리들을 무수히 던져주었다.


  초등교육을 전공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초등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작은 의미는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초등교육을 주제 삼고 공부한 결과 느낀 것을 한 마디로 일축하면 이러하다. '끝이 없다.'


  모든 학문 분야가 끝없이 깊고 넓을 것이고, 내가 초등교육 외에 전공해 본 것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있다. 초등교육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정말로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내 한 몸이 살아온 '한 가지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해하려면 잘 알아야 하기에, 공부할 것은 실로 끝이 없으며, 아무리 공부해도 '충분함'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 '남과 여'를 시청하면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새터민 아이들, 장애를 가진 학생들, 여러 종류의 영재 학생들 등 부족한 나의 현재 역량으로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질려하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너무 보편적이라 고려할 생각도 해 본적이 없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만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문제였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에 오히려 항상 전제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몇몇 과목의 교육론과 교육철학을 수강하고, 사회봉사 활동과 지역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번 교육 활동을 경험해 본 2학년 1학기 말, 지금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마음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교육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점 중 가장 큰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만큼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철저하고 냉엄한 사실이었다. 이를 몸으로 깨닫고 성차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를 토대로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화법이나 교수 학습활동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체계형 뇌와 공감형 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 차이에서 비롯되는 다른 차이들을 잘 알고 이에 맞게 지도해야 적절하게 소통할 수 있으며, 소통은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뇌의 성질은 자궁에서부터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임신 14주경에 정점을 이루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특히 생식기와 뇌의 성별을 결정한다.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뇌의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이들의 뇌는 발달하는 순서도 다르고, 더 발달하는 영역도 다르다.


언어능력과 공감 능력의 경우, 이를 연결하는 두뇌의 부위가 짧아 여자들은 공감적 반응을 쉽게 표현한다. 여성의 뇌량도 남성보다 발달해 양쪽 뇌의 연결이 더욱 긴밀하며, 대뇌피질의 특정 부위에 11퍼센트나 더 많은 뉴런이 있어 이에 해당하는 능력(언어 능력)이 탁월하다. 망막은 남자의 것보다 얇은데, 망막 시세포가 남녀 간의 차이를 만든다. 여자에게는 P세포가 많고 이는 색과 질감식별에 유리하다. 그래서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등의 밝고 잘 보이는 색감을 좋아한다.


이에 비해 남성의 뇌는 어떤 것에 대해, 그 구조와, 어떤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가를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제로 1분 안에 자전거를 그려보라고 할 때, 남자들의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자전거의 작동 원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핵심적인 그림을 그린다. 또한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다. 주차 능력 시험을 해 보면 남자들이 여자보다 훨씬 쉽게 주차를 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망막은 여자보다 두껍고, M세포가 많아 사물의 움직임과 방향, 속도를 잘 포착한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때 여자 아이들보다는 어두운 색감의 색을 많이 선택하고, 움직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또 남자는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시상하부의 일부가 여자보다 2.5배정도 크다. 시상하부는 성적 행동, 체온, 감정 등 사람의 본능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지도할 때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언어와 감정표현에 서투른 남자 아이들에게 '너는 어떻게 느끼니' 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난감해 할 것이다. 그보다는 '그래서 이제 뭘 하려고 하니?' 라고 묻는다면 훨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여자 아이들을 지도할 때 아이들의 감정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체계적인 답변이 요구되는 질문만을 계속 퍼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만큼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자신의 감정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질문에는 대답 의지보다는 회피 욕구만 갖게 될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소심해지는 경향이 크다고 하는데, 이를 충분히 배려하면서 사려 깊게 지도해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 전에 인근의 중학교로 수업을 나간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 스무 명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끌어 구성한 과학 수업을 했었다. 그때, 학생들은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고 앉아서 말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어해서, 수업 진행이 쉽지 않았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서로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자유롭게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더 재미있게 진행되는 수업이라고 수시로 격려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몹시도 부끄러움을 탔고 자신이 적어놓은 것도 자신 있게 읽지 못했다.


  다른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여학생들과 과학 수업을 하는 것을 참관한 적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교에서 '과학 영재'로 불리는 아이들이라 했다. 그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무척이나 적극적이었고 체계성을 따지며 들어야 하는 복잡한 이야기에도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사실 나는 그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내가 수업한 학급의 학생들을 내심 비교하면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이라 발표력도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여학생이었기에, 이들이 유난히, 다른 이들과 자신이 비교될까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이라는 영역 자체가 체계성을 따지는 학문이기 때문에, 아무리 쉽게 접근하며 수업해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친숙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요하는 과목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지레짐작 때문에 내적 동기 유발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중학교 3학년 학급의 그 여학생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남성적 뇌의 특징을 가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다루는 수업이므로 내적 동기도 충분히 유발되고, 익숙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수업이었기에 더 집중하며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1학년 반의 수업을 할 때,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표'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해 보자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진행했더라면 학생들의 집중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내가 진행했던 수업의 컨셉이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 수업이었던 만큼, 좀 더 그들의 '성'을 고려해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편적인 성차를 충분히 고려하되, 반대 성의 뇌를 가진 17%의 학생들의 지도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교사는 평소에 아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뒤, 보편성과 개별성을 모두 충분히 고려한 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이해하게 된 아동의 성차를, 현장에서 학생들을 이해하고 바르게 지도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분명히, 어려움이 닥치는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라 내게 지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잘 안다고 꼭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잘 아는 것은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의 필요조건이다. 성차에 관련된 연구 결과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예비초등교사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하게 되는 교육 활동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항상 더 많지만 말이다.) 훌륭한 초등교사, 초등교육 전문인이 되려는 노력은 평생 그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6. 22:52

Danse Macabre



 

  스트레스가 심한 날, 옥죄어오는 스트레스의 압박에 저항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마련해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냥 음악이 아니라, 활로 켜는 현악기의 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내어 주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들이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음악들. 그리고 이 까미유 생상의 Danse Macabre도, 내가 가슴이 답답할 때 즐겨 듣는 음악 중 하나다.
 

  모든 악기들이 각자의 독특한 음색을 갖고 있지만, 바이올린이라는 현악기가 지닌 음색이 힘겨운 내게 건네는 위로에는 여느 다른 소리들과는 다른 묘미의 '저미는' 것이 있다. 아픈 곳을 가만히 울리고 증폭시켜 청승맞은 눈물을 내어버리기 보다는,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현실 속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이 가슴을 어느 정도 도려내도록 놓아두게 하는 데서 오는 묘한 안정감이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을 언어로 형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어라는 매개 기호물이 지니는 본래의 한계 탓인지, 나의 거친 구사력 탓인지 분간할 길이 없지만-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온 몸의 반응과 감정의 동요는 정말이지 고유하고 특별한 미감이다.


  Danse Macabre, '죽음의 무도'라는 뜻이다. 작곡자의 생각에는 관심 가지지 않고 일단 나에게 느껴지는 대로만 받아들이는 데 습관 들어 있다가, 감상문을 쓰려고 자판을 잡으면서 갑자기 이 표제에 관심이 생겨 검색해 보았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추상적인 감각으로만 존재하던 느낌이, 갑자기 생동감 있는 시각적 영상으로 발현된다. 피아노 소리(목금으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내가 주로 듣는 음원에서는 피아노로 반주된다)는 타건이 유난히 굴러가는 듯 튀어대어, 뼈들이 부딪치는 소리 같다. 깜깜하고 습습한, 서늘한 묘지에서, 죽음의 신의 신호에 이끌리듯 뛰쳐나와 해골들이 흥청흥청, 춤추는 모습. 바이올린 소리의 유연한 격정이 더욱 그들을 무아지경으로 이끄는 듯하다. 산 사람들의 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미감이 있다. 죽은 자들의 무도를 지켜보는 내 얼굴에 미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둥둥 떠오르는 듯한 분홍빛 기쁨과 즐거움은 없다. 그러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쾌감과 황홀경은 하얗게 빛을 발하는 뼈대로 남아 격정적으로 춤춘다.


  나는 Danse Macabre의 선율을 따라가며, 앉아있던 의자에 몸을 쭈욱 기댄다. 눈을 감은 나의 몸은 어느덧 존재를 잊고, 영혼이 박차고 음률 속으로 뛰쳐나간다. 나의 영혼도 죽은 자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하얗게 빛나며, 째질 듯 흩날리는 현악기의 파장에 휩싸여 차가운 춤을 춘다. 이미 흠뻑 취해버려, 도저히 그 춤을 끝내고 싶지가 않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한 시간 쯤 지난 것 같다. 어느덧, 도려내어진 한 쪽 가슴 속으로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2. 15:39

양으로 표현된 조형

 


제출일 : 2009년 6월 8일





제목 : Natural Vintage Blue jean Bag

재료 : 청바지, 천(cotton), 비즈, 실, 코르사주

크기 : 37 cm × 8 cm × 69 cm





작품과정






초기과정1

청바지를 적당한 길이를 남기고 자르고, 비즈와 코르사주, 면실로 여자 얼굴 모양으로 수를 놓았다. 필요한 부분의 솔기를 뜯어 뒤집은 후 올 풀림 방지 처리를 끝낸 안감을 대어 시침핀으로 고정하였다.












중간과정2

안감을 고정한 뒤 옆단, 아랫단을 박음질로 붙이고 잘라낸 바짓단의 옆선 부분을 잘라 묶어 가방 끈을 만들었다.














최종완성

가방끈 두 개는 올을 자연스럽게 풀어 멋을 살리고 올 풀림도 방지한 후 박음질로 가방 몸체에 고정한다. 그 후 천으로 만든 끈과 안감 천과 같은 재질로 만든 리본 모양 장식으로 데코레이션을 주고 마무리한다.














느낀 점

  만드는 내내 재봉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손바느질로 두꺼운 청지를 다루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내 손으로 내 스타일의 가방을 만드는 기쁨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평소에 '이런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린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 좋다'는 식의 감각을 나름대로 갖고 있는 편이었는데, 기성품 중에서 그런 물건을 골라내는 것도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이렇게 내가 원하는 느낌을 살려서 자유롭게 만들어내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가방을 갖게 되는 일은 정말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평소에 자연스러운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청바지 솔기나 재료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바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절대로 대량생산 할 수 없는 나만의 무늬도 새겨 넣고 싶었고,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멋을 주는 데코레이션을 하고 싶었다. 이 가방에는 전체 분위기에 맞는 안감의 선택과 작은 부분의 디자인까지 나의 고민이 지나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탄생한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가방이기에, 정말 애정이 많이 가고 소중하다.





재료적 측면

  청바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청바지가 본래 지니는 멋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이 청바지는 옆선에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가방 몸체에도 살리고 끈으로도 활용했다.

  하지만 너무 '바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에 방해를 준다고 판단되어, 흔히 만드는 방향으로 만들지 않았다. 흔히 바지를 입는 모양 그대로의 방향으로 가방을 만들지만, 나는 옆선이 정면으로 가도록 만들고 앞 지퍼가 옆으로 가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방향의 전환은 가방의 앞뒤 주머니 배치가 같도록 하여 어느 쪽으로 매어도 괜찮은 대칭형을 가능하게 했다. 끈을 만들 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 옆선을 뜯어서 끈을 만들었지만 옆선 무늬의 길이가 부족해 양쪽 끈 모두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통 청지로 만든 끈과 옆선 무늬가 들어간 끈을 각각 가방의 양쪽에 붙여 두 끈이 십자 모양으로 꼬이게 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옆선 무늬가 보이기 때문에 예쁘고, 어느 한 쪽의 가방 끈이 어깨에서 떨어지더라도 각 끈이 모두 가방의 양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며 어깨에서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 실용적인 가방이 완성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을 고려해 데코레이션의 재료 선택에도 주의했다. 안감은 전체적인 빈티지 느낌을 더욱 잘 살려줄 수 있는 초콜릿색 체크무늬 천으로 선택했고, 잔잔한 꽃무늬가 박힌 아이보리색 면으로 벨트 부분에 끈을 넣어 아기자기한 맛을 더했다. 청바지 본래의 데코레이션과 어울리도록 여자 얼굴 모양의 수를 놓고 꽃모양 코르사주를 달아 가방 반대편의 무늬 배치와 통일감과 변화감을 함께 주었다.





기법적 측면

  안감의 올 풀림은 끝 부분을 접어 홈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손바느질한 스티치 무늬가 가장 잘 보일 수 있는 위치에 배치될 것이어서 천과 실의 색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모양도 예쁘도록 바느질 간격에 특히 신경을 썼다.

  끈을 만들 때는 짧게 자른 두 부분을 묶어 리본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마무리하여 자연스러운 멋을 주었다. 끈은 청지이기 때문에 튼튼한데, 금방 잘라낸 뒤의 상태는 멋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자리의 올을 일부러 풀어서 내추럴 빈티지 스타일을 살리고자 했다. 끈 부분에 어느 정도 올을 풀어 놓으면 더 이상 올이 풀리지도 않고, 오래된 청바지의 멋이 살아나 어깨에 메었을 때 포인트가 된다.

  남은 안감으로 코르사주를 만들어 가방 옆선에 부착하고, 벨트 부분의 끈은 가방 옆선에 리본 모양으로 묶어 마무리하여 자연스러운 빈티지 스타일 가방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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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2009. 7. 2. 15:27



면으로 표현된 조형

 

제출일 : 2009년 5월 18일










제목 : The Eiffel Tower

재료 : 우드락

크기 : 22cm × 22cm × 53cm




내용 설명

프랑스 파리는 오래 전 내 로망의 대상이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데, 외국으로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프랑스 파리를 주저 없이 꼽았었다. '프랑스 문화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은 깨졌지만, 그래도 프랑스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에 가 보고 싶은 소망은 여전히 건재하다. 꽃의 도시, 빛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매력적인 도시 파리의 상징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1889년에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인 이 에펠 탑이다.

파리의 공기의 일부를 내 방으로 끌어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국으로의 여행이 주는 설렘을 자극하는, 크기는 작지만 풍부한 에너지를 지닌 구조물을 우드락으로 만들어 보았다.




과정에서 느낀 점

실제 에펠 탑의 형상을 빼닮도록 해야 했기에 사진의 축척을 재고 실제 건축물을 단순화시켜 설계하는 작업에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복잡한 구조를 단순화시켜 표현하여도 에펠 탑 본연의 웅장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떻게' 단순화 시켜야 할 지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다. 에펠 탑의 곡선미를 우드락의 평면적 요소만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생각하는 과정도 도전적인 과제였다.

처음에 에펠 탑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자신 있었지만 실제로 도면을 그리고 만든 조각들을 붙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정확하게 그리고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조각을 붙이다 보면 이리 저리 어긋나기도 하고, 기울어지는 부분 때문에 안정적으로 접착제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도 했다. 제작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경험은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할 때 부딪칠 문제들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재료적 측면

우드락은 다양한 두께와 색깔로 판매되고 있어 작품의 방향에 따라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우드락은 무른 편이기 때문에 칼을 사용하는 요령이 있다면 다루기에 아주 까다로운 재료는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손톱 등의 작은 압력으로도 훼손되기 쉬우므로 보관과 운반, 제작 시 취급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우드락 전용 접착제를 사용하면 우드락과 우드락을 깔끔하게 붙일 수 있다. 접착 강도는 꽤 강한 편이지만 붙이기 전에 사포로 절단면을 매끄럽게 다듬어야 접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기법적 측면

우드락에 도안을 옮길 때는 종이에 그린 도안을 올리고 연필로 스케치했다.

직선을 자를 때는 자를 대고 칼을 수직으로 세운 뒤 되도록 한 번에 힘을 주어 잘라냈으며, 곡선도 되도록 칼의 수직 각도를 유지하고 한 번에 잘라내어야 절단면이 깔끔했다.

칼은 자주 갈아주어야 우드락이 지저분하게 잘리지 않았고, 절단면을 사포로 갈아주어야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접착제를 바르고 두 우드락을 붙일 때 불안정한 경우에는 접착제가 안정될 때까지 손으로 우드락을 지그시 누르며 잡아주면 접착에 도움이 되었다.

조각의 크기가 맞지 않아 수평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다른 조각을 올리는 데 문제가 있을 때는 사포로 수평이 될 때까지 갈아낸다. 조각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칼을 사용하는 것은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포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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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