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2009. 9. 1. 19:26



인간은 창조할 수 없다. 창조는 신의 몫이지.
인간은 다만,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창작하고, 교환할 뿐이다.
그걸 잘 하는 사람들은 천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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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술? 미술!


미술..................... 미술이라. 미술이 뭐지?  참 원초적인 질문인데! '술' 이란 말에 집중해서 살펴보면, 그래, '기술', 어쨌든 손재주가 있어야 하는 건가보다,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하면,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현대미술에선 특히 더욱 그렇다. 개념미술이라 한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아이디어가 곧 미술이 된다. 꼭 현대미술에서만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랬다던가..... 누군진 기억이 안 나는데, 아주 먼 과거의 누구도 벌써 그렇게 말했었단다. 미술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라고.

누구나 미술을 할 수 있다. 미술이 재주가 있는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의 점유물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미술을 아주 협소한 것으로 여기고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론은 그게 아니라는 거지. 우리의 모든 것이 미술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미술이다.(미술을 하는 사람의 눈으로는 모든 걸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그 모든 눈을 향유할 수 있는 초등교사는 정말 특별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고로 미술사는 곧 인간사이기도 하다. (사실 선사시대부터 살펴보다보면, 이 말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다. 그리 어렵거나 심오한 말이 아니야.)누구나 미술을 향유할 수 있다. 미술은 곧 우리의 삶 자체이기 때문에.







# 1.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예전부터 사고는 싶었는데 선뜻 살 수 없었던 책이다. 이걸 읽을 준비가 안 되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거금을 털어 쉽게 거머쥘 수 없었다. 아직도 준비가 충분히 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구하려 한다, 아니, .... 오늘 오전에 주문했다.

유럽문화와 세계사를 통괄하는 큰 관점에서 미술사를 서술한 책이며, 철학과 문화의 기저 위에 서술되었기 때문에 단순 미술사 지식 이상의 깊은 통찰을 준다는 책. 세계사와 유럽문화, 철학은 지난 방학동안 파고 싶었던 영역들인데, 너무 바빠서 미처 손대지 못했었다. 아쉽지만, 부족한 백그라운드에서 읽을 수밖에 없지. 앞으로 채워나갈 부분들이기에, 두 번째, 세 번째 읽어나가면서 더욱 성숙하는 나를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 2. 작품감상


미술을 향유하는 것, 그것은 감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작품을 볼 때, 감정을 갖고 보게 되고, 혹은 작품을 보면서 희노애락의 감정이 촉발된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 작품 감상의 내용보다는,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즉 태도가 더 중요하다.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 미술가가 어떤 예술적 목표를 노렸는지, 혹은 이전의 작품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목표의 변화)를 읽어내고자 해야 한다. 왜 이것을 그렸을까, 왜 저렇게 표현했을까, 궁금증을 던지며 감정을 수용하다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도 보게 된다.

감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리고 작가의 눈을 통해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작품 감상이다.







# 3.


미술의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적 진보로 받아들이는 것은 소박하고 그릇된 해석이다.
어떤 한 방향에서의 성과나 진보는, 다른 방향에서 보면 손실이기도 하니까. 이러한 주관적 진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예술적 가치에 있어서, 변화는 객관적 증대가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홍산 문화의 유물 여신상을 보면, 꼭 마야인 같다.
아프리카의 느낌도 물씬 풍긴다.
선이 매우 굵고 강렬하며, 뜨거운 에너지가 넘친다.
이것이 기원전 3500년에서 4000년 사이의 작품.

그리고, 1950년대 헨리 무어의 작품.
옛것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는 순간, 알게 된다.
미술에 '발전'이 있는 개념은 심각한 오해만을 낳는다.
굴러가면서 진흙이 계속 묻고, 떨어지기도 하는 수레바퀴,
이것이 역사다.






# 4. 사실


사실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항상 많았다. figurative. 즉 구상!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형'이다. 사실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 생활에서 좋아하는 대상을 그림 속에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꾸르베의 사실적 그림에는 현장을 스냅 사진으로 포착한 것같은 생동감, 친근함이 있다. 밀레의 그림에도, 자연주의와 낭만주의가 깃든 사실이 흐른다. 우리는 그 그림들을 보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것들을 싫어할 리 만무하다.








# 5.  마티스의 '춤'


마티스는 그림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은 결국은 '苦'이기에, 그는 그림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armchair에서 쉬는 것과 같은 순수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기를 원했다.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적대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행복과 편안함 속에서 감동에 젖는다. 그가 그런 에너지를 담아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은 그 에너지로 충만하다.

그의 그림 'Dance'를 보자. 뉴욕 박물관에서 보는 실제 그림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보는 사람들은 큰 감동을 받는다고 하는데, 난 아쉬울 따름이고. ㅠㅠ 아무튼 그 그림은, 색과 선이 지배한다. 구상이긴 해도 매우 단순화되어 있어, '형'은 거의 강조되지 않고 있다. 마티스는 본래 색과 선을 강조한 작가라고 하네. 아무튼, 색과 선이 유연하게 사람을 끌어당기고, 이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그림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형태를 강조한 꾸르베의 그림에서 찾는 안정감과는 사뭇 다른 그것.








# 6. 칸딘스키와 추상


美를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아름답다는 것에 대한 취미와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는데, 자연이 항상 우리가 익히 보아 온 그림들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습적인 형태와 색채가 가장 옳은 것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지극히 회화적인 요소만으로도 아름다움은 창출된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자. 알아볼 수 있는 형태는 없고, 색과 선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른바 abstract의 시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옴으로써, 미술의 세계는 급격히 풍부해졌다. 이 얼마나 큰 자유인가! 형태로부터의 자유라니! 철학적 사고는 쭉 확장되고,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했다.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필요는 없었는데. 자유롭게 누리면 되는 것이었는데. "뭘 그렸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미술이 어려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렇게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상과 미술의 괴리'의 시기가 도래하고 말았다.







# 7. 자유롭게 감상하라!

그러니 당신들, 그 편견에서 벗어나라! 속박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감상하라! 마음껏 상상하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도 모르겠다고 돌아선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를 보자. 브로드웨이에 안 가봤으니 생생하게 느낄 순 없을지라도, 형형한 네온사인이며 바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가 본 사람들은, 정말 이것이 브로드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다. 그냥 느끼면 되는 거다.








# 8. 아이콘

'시대의 아이콘' 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아이콘이란 그 시대의 철학, 역사, 문화 등 모든 것을 함축하여 symbol화 된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서양 미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모나리자를 들여다 보면, 그야말로 서양의 모든 것이 들어있어서 이 그림 하나만 이해하더라도 서양의 전반적인 철학, 역사, 문화가 설명된다. 바로 이런 것이 아이콘이다.

잠깐! 다만, 아이콘과 아이돌은 다른 거다. ^^ ; 최진실과 마이클 잭슨은 시대의 아이콘이지만, 2PM을 시대의 아이콘.........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이 아이콘이 되려면 좀더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적합 여부는 세월이 좀 더 흐른 후에 결정될 것이다.






# 9. 고려 불화

인류가 그린 그림 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 꼽을 수 있을 정도라는 고려 불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전시회가 열렸다는데, 사실 몰랐던 나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기회란 것도 미처 알지 못했지.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또 그만큼 성숙하는 법. 인지 세계는 정말 냉엄하다. 철저한, 너무나 철저한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

고려 불화는 약 130여 점 정도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 중 작품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10여 점 정도만 우리나라에 있고 수작들은 죄다 일본에 있다고 한다. 고려 청자와 함께 고려의 아이콘으로 꼽을 만한 고려 불화! 휴, 꼭 내 눈 앞에서 직접 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음, 그리고 수월간음상도.





# 10. 축복 받은 순간을 만나는 영혼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려 본 일이 있는가. 또한- 그림을 보고, 살얼음이 스친 듯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을 가져 본 일이 있는가. 후자 쪽이 더욱 강렬한 경험인데, 이런 경험들은 축복을 받은 순간들이다.

마음이 활짝 열려 있고 완전히 놓여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여리고 감성적이며 순수한 영혼들은, 그런 순간을 많이 만난다. 이들은 세상 모든 것과 교감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그렇다.






# 11. 우리나라는 어떤 문명에서 왔을까

세계 4대 문명 중 우리나라는 어느 문명에서 온 걸까. ..................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해당되는 문명은 없고, 우리나라는 문명이 없었나보다.................... 다른 곳에서 찬란한 문명이 꽃피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아직도 돌을 줍고 있었나보다........ 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홍산 문화.

요하 쪽에서 발원했다는 이 문화는, 황하문명보다 무려 천여 년이 앞섰단다. 삼족오, 빗살무늬 토기(신석기 시대에 발해 연안 등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 적석총(돌로 피라밋 모양으로 쌓아 만든 무덤), 옥 숭배(금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혹자는 신라인들이 금을 숭배하였다고 하여 우리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신라인은 몽골쪽 흉노족의 후예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 문화 등, 당시 우리 문화의 아이콘이 모두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의 기원이 맞다고 본단다. (엠비씨, 케이비에스에서 검색해 보면 많은 동영상 자료들이 나온대. 꼭 찾아봐야지.)

이 홍산 문화를 제 5의 문명으로 넣고자 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이 마당에 중국은 황하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모든 걸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을 ..................... -_-......... 하아.....................................






# 12. 사람의 에너지

사람들은 고유의 에너지를 갖는다.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다정다감하고 참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북유럽 노르웨이의 친구는, 아무리 성격이 따사롭고 오래 만났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찬 기운을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의 가나에서 온 친구는, 두 번째쯤 만났는데도,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뜨끈뜨끈하고 강렬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 그리고 나는, 어떤 에너지를 가진 사람일까.






# 13. 구석기의 유물, 빌렌도프의 비너스

비너스라는 말은, 특정한 신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여신'이라는 의미를 갖는 광범위한 단어. 이 역시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구석기의 icon, Venus!

이 인형은 11cm로 매우 작다. 휴대할 수 있었다는 뜻일게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배, 가슴, 엉덩이가 매우 강조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반면 얼굴은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나?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한다. 현대에 여신상을 만든다면 얼굴을 매우 공들여 조각하겠지만, 과거에는 얼굴보다는 출산 능력이 중요했다. 여신상의 색깔은 자연석의 빛깔에 칠한 색이 겹쳐져 전체적으로 붉은빛을 띤다. 이는 월경을 의미하며 역시 생산성을 의미한다고, 현대의 해석가들이 덧붙인다. 그 시대에는 생산하지 못하면 여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사냥을 못하면 남자가 아니었으며, '사냥'이라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 휴대용 여신상이 쓰였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덧. 홍산 여신은 빌렌도프의 비너스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거란다. 헉.








# 14. 거석 문화

우리나라의 거석 문화는, 세계 거석의 70% 정도가 이 땅에 밀집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화순 지역)거석을 살펴보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사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장기 기억 속에 저장되어 출력의 간극에서 발버둥치는 중이겠지.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9. 1. 00:53







교수님! 정말 많이 보고싶었어요.

교수님께서 학교에 계실 때 수업을 꼭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얼마나 몸이 달았던지!
매번 시간표가 안 맞거나, 혹은 교수님께서 수업을 맡지 않으시거나 해서 놓쳤었다가,
이번에 드디어,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너무 빡세서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된 초등과 2학년 2학기에,
야간수업을 불사하고 총알같이 신청한 서양미술개론.
처음으로 신청한 인원에 포함되었던 건 제가 행운아란 증거입니다.
1학년이 아니고, 미술교육과가 아닌 사람이 저 뿐이란 사실에 약간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론, 전 지금 정말로 흠뻑 행복합니다.




전 교수님을 은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 (그래보았자 약 1년 전이군요) 저를 뒤흔들어 놓으신 분이세요.
소경과도 같았던 제 눈을 뜨게 하셨지요.

길을 잃고 헤매던 제가,
영문도 모른 채 두 발 딛고 서 있던 초등교육의 길이
정말로 제 길임을 알아차리게 하던 첫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셨지요.
제가 오랫동안 잃고 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왜 잃었었던지,
어떻게 찾을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일지를 알게 하시고,
눈물로 그 감동의 밤을 보내게 하셨지요.
응어리진 것들을 토해내어 색채와 형태로 빚어내며,
기나긴 세월동안 얼어붙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녹아내리는 충격으로
이상한 흥분과 서러움을 쏟아내던 그 날 밤, 그 날 밤들.





교수님을 다시 미술관 강의실에서 뵈니 정말 기적같았습니다.
공사가 덜 끝난 것 같은 회색 벽돌벽의 강의실,
그곳에 은은하게 퍼지는 주황빛 어두운 조명,
그리고 그 조명 아래 교단에 서 계시던 교수님.
예쁘다, 우아하다, 아름답다, 따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용되지 않았어요.
정말 기묘한 아름다움의 기운이 연기처럼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강의실은 흡사 마법학교의 지하 강의실같았어요.
신비롭고, 비밀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답고, 차분하나, 이상하게 흥분되는.

아이같이 순수하신 교수님의 조근대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학생들이 졸고 있으면 교감이 되지 않아 말문이 턱 막혀버릴 정도로 예민하고 감성적인 교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몸이 노긋노긋하게 풀리고,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흐르며, 정신도 완전히 열어놓게 됩니다.
아이처럼,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교수님, 다시 교수님과 한 학기동안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수 있게 됨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휴. 말로 다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입니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8. 31. 17:02




KBS 교육기획, 학교를 살립시다
"스포츠는 평생 필수과목이다"

반쯤 시청.






# 1. 운동선수의 학습권

학업과 운동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당연히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수업 시간에 운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운동 선수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경기 일정 때문에 학업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학생이지만 학교에 제대로 다녀 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 너무나 많다. 학업과 운동을 함께 하기 위해 미국이나 독일 등지로 어렵게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많다.

외국에서는 제도적으로 학생 선수에 대해 규정을 설정하고 있다. 그들은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므로, 성적이 되지 않으면 출전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운동 시간과 휴일 등에 대한 규정도 명확하다. 운동은 반드시 수업을 모두 마치고 하게 된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 2. 주변인의 시선

외국에서는, 운동과 학업을 함께 하는 학생들을 대단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러워한다. 학업과 운동을 모두 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학교에 오기 전에 운동, 끝나고서도 운동을 하면서, 공부까지 해 내는 것은 굉장히 집념 있고 대단한 일인 것이다. 공부를 하되, 원하는 걸 다 시도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주는 미국 등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선수 하면 공부를 못해서 운동하는 애, 머리가 나쁜 사람 등으로 비치기 일쑤.

주변인의 시선이라는 환경도 중요한 요소인데, 우리네 운동 선수 학생들은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다.




# 3. 왜?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특기자 전형이 제 3 공화국 때 생겼단다. 그래서 이렇게 되어 버린거야. .....................



# 4. 섬 문화

우리나라에서는 학업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꿈만 같은 일. 유태호 교수는, 학교 운동부 실태를 다룬 논문에서 학교 운동부 문화를 '섬 문화'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 5. 스포츠와 교육

스포츠를 통한 인성교육의 열쇠는 코치가 갖고 있다고 말하는 미국. 운동 코치의 지위가 우리나라와 같지 않을 것도 당연하다. 스포츠도 교육의 한 부분이며, 균형과 조화점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전문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 제대로 된 체육 교과에 대한 인식이 전무 수준인 우리나라의 실태 이모저모를 뜯어보게 만드는 동영상이었어.
스포츠를 통한 교육, 스포츠와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되겠다.
 나머지는 다음에 시청한다고 하니, 기대해 봐야지.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8. 31. 16:44




# 1. 초등교사 vs. 중등 체육교사

중등 체육교사 :
애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숨만 나와요. 대체 초등학교에서 얘들이 뭘 배우고 올라온 건지 모르겠네요. 도무지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할 줄 아는 게. 다시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한다고요. 초등학교 체육시간에는 대체 뭘 하는 겁니까?

초등교사 :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체육 활동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대개는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체육 활동입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중학교 이상에 진학하면 체육을 가장 싫어하는 과목으로 찍게 되죠. 대체 어떻게 가르치길래, 그렇게 체육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체육을 싫어하게 되는 거죠?



# 2. 초등선생? 그거, 나도 가르쳐!

초등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 초등교사가 전문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 보아도,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대체, 우리의 전문성은 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날이 갈수록 교권이 추락한다. 동네 어르신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말한다.

초등학교 공부? 그거 나도 가르쳐! 웬만하면 공부 좀 더 해서 중학교 선생 하지.....
초딩 선생도 좋지만 아깝다. 그래도 편하긴 하겠다 야. 시집은 잘 가겠네.



# 3. 우리의 전문성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1.

한 학우가 말했다. 초등학교 공부는, 내용 자체가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맞아. 다들 안다고 생각하거든. 더하기 빼기 가르치는 거, 거기에 무슨 전문성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거, 당연하지.

나는 이런 생각도 갖고 있다. 초등학교, 공부, 교육, 학교, ...... 이 모든 것은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

국영수는 '중요 과목'이고 '가정과'는 천대받는 이유가 뭔지 아셈? 국영수는 사실 아무나 잘 하기에는 멀어 보이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반면 가정과는,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한마디로 과거의 '가사'와 같은 과목이라 착각한다. 우리네 모든 엄마들이 다 할 수 있는, 그리고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미 '잘 안다'고 착각, 착각, 또 착각한다. 익숙한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른 것임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잘 알고, 나도 할 수 있고 아무나 할 수 있으니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기고 마는 것이지.

작년에 가정관리학회의 추계 정기 학술대회에 다녀왔었다. 그리고 미래형 교육과정을 막고자 그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찾는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곳에는 가정학과 가정교육에 평생을 바치신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께서 눈물을 머금고 분을 억누르며 가정학과 가정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분야의 고유하고 소중한 가치에 대해 역설하고 계셨다. 그 분들이 너희 말마따나 '아무것도 아닌' 요리며 빨래 같은 것만 평생 연구하셨을 것 같으셈?



# 4. 교사론.

교사는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한 교육관과 교육철학, 각 교과에 대한 교과관을 바탕으로, 그 지식의 참 가치를 학생이 볼 수 있도록 일깨워야 한다. 그 지식을 통해 학생들이 새로운 감각을 얻고, 스스로 끝없이 확장해 나갈 원동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교사는 학생의 발달단계와 그들의 세계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그들에게 이입하기도 하고 관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식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다양한 가치를 습득하고 전인적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 전인격적 멘토가 되어야 한다.




# 5. 우리의 전문성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 2.

그러나 우리네 초등교사를 상기할 때, 마음에 깊이 남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 역시 그 수업은 초등교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수업이었어.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교사가 마음 속에 있는가. 없어. 내가 만난 초등교사들 중에도 없었어. 심지어는 '현대의' 내 동기들이나 선배들도, 교육 활동을 가서 '만행'을 저지르기도 해.

그래서 아무도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거야. 우리가 경험한 초등교사의 대부분은 이랬기 때문이지.

수학? 풀어!
체육? 놀아!
미술? 그려!




# 6. 우리의 전문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결국 답은 아이들이다. 우리의 전문성을 교사의 학생들이 인정하지 않아 없어져 버렸듯, 우리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들 뿐이다. 아이들은 안다. 이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어떤 생각을 갖고 수업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선생님의 행위가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너무나 잘 안다.

사실 멘토링을 하면서 너무나 절실하게 느꼈던 대목이었다. 이 사람들하고 어디 나가서 동문이라고 말하기 싫을 정도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던 선배들에게 치여 지칠대로 지쳐 있었을 때, 내게 힘을 준 사람들은 동료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었다. 매일 매일을 수업 준비와 하루 반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내가, 멘토링 마지막 날까지 독하게 그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지켜보아 준 사람들은, 바로 내가 대하던 아이들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열정을 쏟던 대상,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며 그렇게 하루하루 힘을 냈었다.





수현이네 반 선생님께

To. 선생님 ♡
선생님~! 매일 수현이랑 공부하는거 보면 진~짜 재밌어 보였어요. ㅜ.ㅜㅋ
선생님~! 이제 일주일이 다 되었네요. ㅜ^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이네요 ㅜ.ㅜ
시간도 별로 안 된 거 같은데 ㅜ.ㅜ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ㅡㅡ;;ㅠ
선생님! 다른 학교로 발령나셔도 저희 잊지 마세요! 저도 안 잊을게요!
말 안 들은 거 죄송하고요...... 항상 웃어주시던 거 감사해요........
그리고 이 멘토링 저에게 큰 추억으로 남을거예요.
감사하고 사랑해요 ♡

건강하세요! 글구 놀러오세요! 09. 8.8 소이올림


 멘토링 마지막 날, 소이의 편지

#3. 교사에게 힘을 주는 사람


수업을 참관(?)한 6학년 소이는 처음엔 약간 어색해 하며(아마 그런 식으로 수업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나도 내가 하던 식의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저학년 수업이라 동화적 요소가 많아 머리가 큰 고학년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뭔지 모르겠다’며 툭툭대고 지나갔으나, 신기한 듯 자꾸 찾아와서는 이내 빠져들어 같이 수업을 들었다. ‘수업 진짜 재미있게 한다’고 말하고 지나가기도 했는데, 괜히 고마웠다. 사실 누구의 인정보다도 스스로 최선을 다 하고 학생이 자라는 모습에서 혼자 조용히 보람을 찾는 교사는, 고고하기도 하지만 많이 외로운 직업이다. 아직 교사는 아니지만 혼자 매일 밤을 논문을 뒤져가며 새벽까지 스탠드 불빛을 밝히고 수업 준비를 하느라 지쳤던 나에게, 학생의 긍정적인 한 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멘토링 일지 중. 20090808




# 7. 발야구와 피구

발야구와 피구.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것. 여기서 대체 뭘 배울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난 이 땅에서, 발야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피구는, 없애야만 하는 이상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먼저 발야구. 발야구를 하면서, 한 시간에 보통 많아봐야 4회까지 돌아가게 되는데, 그 동안 공격 팀은 한 사람당 공을 두 번 쯤 차고, 수비 팀의 경우 공을 한 번도 잡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팀이 이기고, 와, 이겼다, 하고 한 시간이 끝나는 거지.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발야구에 대해 내가 어렴풋하게 생각해 오던 문제점이 명확히 정리되었어. 생각나더라, 또 그놈의 멘토링. 우리의 선배들은 애들한테 당연하다는 듯 발야구를 시키고 시간을 때웠지. 너네, 체육교육론이랑 방법론 다 들은 초등교육과 전공 학부생 맞아?

다음, 피구. 교수님께서 피구가 싫은 사람은 손 들어보라고 하셨을 때, 난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왜냐고 물으셨을 때, 내 옆 학우는 공이 무서워서라고 했고, 내 대답은 이랬다.

사람을 금 안에 가둬두고 공으로 쳐서 죽이는 게임이잖아요.

학우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지만, 교수님께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철학적 대답이라며 말을 받아주셨다. 학생들이 공을 무서워하게 만들고, 한 사람씩 탈락시키는, 탈락 게임. 그게 피구라시며.

난 진심으로 피구가 싫었다. 체육 시간마다 하는 피구, 친구들은 시간을 때운다고 좋아했지만 난 그저 싫었다. 공에 맞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었다. 누군가가 날 겨누고 공을 던져 맞추면, 난 죽은 것이었고 나가야 했다. 난 친구들을 향해 공을 던지는 건 더 싫었다. 받으라고 던지는 게 아니라, 맞추려고 던지는 게 너무 싫었다. 동물에게도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 대체 이걸 하면서 얻는 게 뭐란 말이야. 비교육적인 면이 수십가지다. 아무렇지도 않게 십여 년 동안 학교에서 이뤄지는 이 피구 게임에서, 배틀로얄이 연상되는 건 나 뿐인가.


이런 게임을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하면서, 발야구와 피구를 금지하면 '그럼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뭐 해요' 하고 되묻는 초등교사가 있다는 건, 충격의 수준을 벗어난 폭탄급 발언이다. 당장 교직을 해제하거나 자격 연수를 철저히 다시 시켜야 한다. 마음껏 놀아라, 놀면서 얻는 것들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다면 그냥 놀라고 하더라도 그 교사의 철학 아래서 의미 있는 수업이 된다. 그러나 철학 없는 시간 때우기는 범죄나 다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 8. 기능과 잘 가르치는 능력의 상관관계

잘 하는 것을 잘 가르칠 가능성은 언제나 높겠지.
하지만 잘 한다고 해서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야.
잘 하지 못하더라도 잘 가르칠 수도 있는거야.

중국의 교사들을 봐.
수학의 경우도 그렇고, (리핑 마의 논문을 읽어보면 참 충격을 많이도 받게 된다.)
체육도 그렇다네.
10년 전의 체육 수업이 이랬대.
여러 장애물을 설정해 두고, 아이들끼리 기록을 재며 빨리 들어오는 법을 연구하게 했대.
아이들은 각 주자들의 특성도 파악하고, 장애물의 배치와 간격, 순서 등의 변화,
옆 팀들의 전략 등을 보고 배우고 연구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지.
여기서 교사는 아이들의 기록의 측정해 주고 문제를 던져준 것 밖에는 한 일이 없지.
하지만 이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명백했어.
교사는 체육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어.
그들은 언제나 노력하고, 어떻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 언제나 연구해.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를 낳지.




# 9. 왜 체육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나는 어릴 적 몸을 움직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어.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체육을 가장 싫어하게 됐지.
그리고 대학에 왔어.
난 대학에 와서는 절대로 체육을 안 할 줄 알았어.
하지만 본의 아니게 초등교육을 전공하게 되었고, 3학기 동안 체육을 전공 수업으로 들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대학에서 교수님들께 체육을 배우면서는 기분이 전과 달랐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이 다시 상기되고,
체육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었어.

피구나 발야구만 하면 끝나던 때와는 배우는 것 자체가 달랐지.
1학기 때 나는 10년 전 중국에서 이루어졌다는 그 수업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교수님께선 우리에게 전략을 찾는 법(전략이 아니야. 전략을 찾는 법. 물고기를 찾는 법 말이야.)을 알려주셨고,
우리는 단순하다고만 생각했던 이어달리기 수업에서
문제 해결력, 논리력, 협동심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부차적인 것들을 배웠다.
3학기의 구기 수업 때도, 야구며 축구라면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내가,
보는 스포츠, 읽는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2학기 전통 무용 수업 시간에도, 우리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흥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우리의 멋에 흠뻑 취했었다.
난 그 감흥을 몽골 땅에서 몽골의 대학생들에게 전해주었고.

기능을 배우고, 그 기능에 뛰어난 사람만 재미있는 것이 체육 수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매 수업 시간은, 내가 생각하던 체육 시간은 진정한 체육교과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기능 뿐만 아니라 다른 전인격적 가치들을 체득하는 과정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철학을 갖고 체육교과를 가르치시는 교수님들의 가르침 속에서, 학생인 나는 그 노력과 열정, 가르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당연히 느낄 수 있었다.

왜 체육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반드시 정립되어야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
3학기 동안의 올바른 체육 교과를 경험하고 난 지금,
나는 어렴풋하게 느껴왔던 '그것들'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나의 언어로 정립하려 한다.
그 답을 찾고자, 드디어 4학기가 된 지금, 체육교육론 강의실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앉았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6. 23:11


기말고사 1번으로 제시되었던 문제와, 내 답안.
예외적으로 기말고사를 메일로 제출하는 형식이 취해졌지만,
당연히 그 문제의 수준은 녹록치 않았다.
이 문제 때문에 후배 학생증까지 빌려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반나절동안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했던 기억이;; 
이 과제를 하던 날 밤 기숙사에서, 우리는 정신없이 토론을 벌였다.





인지발달이론의 일반적 특징과는 다른 도덕성 발달이론의 독특한 성격을 제시하고,
 Kohlberg의 도덕성 발달단계의 초등학교 적용 한계점을 설명하시오.





  콜버그는 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에서, 도덕성이 인지능력이 발달하고 사회적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단계적 계열을 따라 순서대로 발달해간다고 주장하였다. 콜버그의 이 이론은 인지발달이론의 일반적 특징인 '단계적 계열'로 설명한다는 점, 순서가 있다는 점 등을 따른다. 인간이 미리 정해진 최종 상태를 향해 나아가며, 인간은 그 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관점에도 부합한다. 인간의 도덕성도 목표 지향적이자 목적론적으로 발달하며, 발달단계들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달경향을 나타내고, 이 변화는 양적이기보다는 질적이다.


  이러한 유사점이 있음에도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이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특징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는데, 단계별 연령을 제시하지 않아 나이와 단계의 수준의 상관관계가 다른 이론보다 훨씬 적은 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인 인지발달은 특정 연령대에 도달하면 몸에 프로그램화된 정보를 따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도덕성의 경우는 다른 인지발달보다 이런 경향이 적다.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거치는 단계는 특히 4단계까지이고, 나이가 굉장히 많이 들어도 전인습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다른 인지발달이론의 '개인차' 수준을 넘어설 만큼 많다. 환경적 요소가 특히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5, 6단계는 특정 문화권의 가치를 담은 단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거치는'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발달단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완벽히 객관적인 사실을 판별하는 단계들이 아니라 가치지향적 성격을 띠는 단계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단계는 때로는 퇴행하기도 한다. 상위 단계로 발달이 일어나면 하위 단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 발달이론들의 단계와는 다른 점이다.


  '도덕성' 발달을 인지발달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 도덕성 사고 발달이 행동적 측면과 연결될 것이라는 전제로 연구된 것임도 콜버그 이론의 특징이다. 다른 인지발달이론은 연구 대상 자체를 연구하였지만, 콜버그의 이론은 연구 대상을 한정적으로 정의한 뒤 이것이 다른 요소와 기능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연구한 것이다.


  콜버그의 이론은 도덕적 사고 발달이 곧 양심의 행동적, 감정적 측면과 연결되므로 도덕적 판단 발달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 인지발달 이론을 도덕적 영역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의 개념과 연구 방법을 정립하는 과정은 일반적 인지발달이론의 탄생 배경과는 달랐다. 당시는 '도덕적' 추론에 대한 것이 과학적 연구 주제로 적절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콜버그는 '도덕성'의 개념을 '정의에 관한 추론능력'으로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행동보다 추론을 우선시하는 연구로 행동주의와 실증주의 전통을 파괴하였다. 따라서 그의 도덕성 발달이론은 여러 한계를 갖는다. 특히 이 도덕성 발달단계를 초등학교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계가 발생한다.


  첫째,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행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덕성의 인지발달이론은 도덕적 행위보다 도덕 관련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사고능력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바른 판단 능력이 도덕적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에서 도덕 교육을 할 때 콜버그의 이론을 고려한다면 이런 '판단'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게 되고, 학생들은 '도덕성'이 아닌 '도덕적 판단 능력'만 발달시키게 될 것이다. 대부분 전인습 수준에 머무르는 초등학생들을 고려하면, 이런 도덕 교육이 성인기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둘째, 그의 이론이 말하는 도덕성은 '개인의 권리와 공정성'이라는 도덕성의 일부 측면만을 반영하기에 교육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성차별적 요소를 포함할 우려가 있다. Gilligan이 초등학령기 아동이 포함된 6-18세 소녀들이 소년과는 달리 공정성 보다는 이타적 가치를 중요시 여긴다고 밝힌 바가 있는 것처럼, 도덕성은 콜버그의 이론에서 제시되는 단계만으로 측정될 수 없다.


  셋째, 초등학생들은 콜버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능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이론에서처럼 자기중심적 반응, 혹은 강한 힘에 대한 복종으로 그렇게 제한되어 있지 않을 수 있다. 데이먼, 아이젠버그, 호프만 등의 연구가 이런 의견을 타진한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공감능력이 아주 어린 아기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는 등, 그의 이론을 초등학교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내용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아이젠버그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은 문화적 특성이나 순간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발달하지도 않고 예측 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엄격하고 절대적인 단계를 가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6. 22:57

 


아동발달과 교육


아이의 사생활 1부 '남과 여'를 시청하고








 

  지난 방학 때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한번 보았던 것이기 때문에 다시 보면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어, 보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지난 방학에 시청했을 때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지만, 2학년 1학기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본 '남과 여' 다큐멘터리는 또 다른 생각거리들을 무수히 던져주었다.


  초등교육을 전공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사실 본격적으로 초등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짧다면 짧고, 작은 의미는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초등교육을 주제 삼고 공부한 결과 느낀 것을 한 마디로 일축하면 이러하다. '끝이 없다.'


  모든 학문 분야가 끝없이 깊고 넓을 것이고, 내가 초등교육 외에 전공해 본 것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있다. 초등교육 전문가가 되는 길은 정말로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내 한 몸이 살아온 '한 가지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해하려면 잘 알아야 하기에, 공부할 것은 실로 끝이 없으며, 아무리 공부해도 '충분함'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 '남과 여'를 시청하면서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새터민 아이들, 장애를 가진 학생들, 여러 종류의 영재 학생들 등 부족한 나의 현재 역량으로는 전혀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질려하고 있었는데, 심지어는 너무 보편적이라 고려할 생각도 해 본적이 없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만 효과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문제였지만, 사실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기에 오히려 항상 전제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몇몇 과목의 교육론과 교육철학을 수강하고, 사회봉사 활동과 지역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번 교육 활동을 경험해 본 2학년 1학기 말, 지금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마음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교육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점 중 가장 큰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만큼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철저하고 냉엄한 사실이었다. 이를 몸으로 깨닫고 성차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를 토대로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화법이나 교수 학습활동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체계형 뇌와 공감형 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 차이에서 비롯되는 다른 차이들을 잘 알고 이에 맞게 지도해야 적절하게 소통할 수 있으며, 소통은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뇌의 성질은 자궁에서부터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임신 14주경에 정점을 이루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특히 생식기와 뇌의 성별을 결정한다.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뇌의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이들의 뇌는 발달하는 순서도 다르고, 더 발달하는 영역도 다르다.


언어능력과 공감 능력의 경우, 이를 연결하는 두뇌의 부위가 짧아 여자들은 공감적 반응을 쉽게 표현한다. 여성의 뇌량도 남성보다 발달해 양쪽 뇌의 연결이 더욱 긴밀하며, 대뇌피질의 특정 부위에 11퍼센트나 더 많은 뉴런이 있어 이에 해당하는 능력(언어 능력)이 탁월하다. 망막은 남자의 것보다 얇은데, 망막 시세포가 남녀 간의 차이를 만든다. 여자에게는 P세포가 많고 이는 색과 질감식별에 유리하다. 그래서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등의 밝고 잘 보이는 색감을 좋아한다.


이에 비해 남성의 뇌는 어떤 것에 대해, 그 구조와, 어떤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가를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제로 1분 안에 자전거를 그려보라고 할 때, 남자들의 그림은 간결하면서도 자전거의 작동 원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핵심적인 그림을 그린다. 또한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다. 주차 능력 시험을 해 보면 남자들이 여자보다 훨씬 쉽게 주차를 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망막은 여자보다 두껍고, M세포가 많아 사물의 움직임과 방향, 속도를 잘 포착한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때 여자 아이들보다는 어두운 색감의 색을 많이 선택하고, 움직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또 남자는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시상하부의 일부가 여자보다 2.5배정도 크다. 시상하부는 성적 행동, 체온, 감정 등 사람의 본능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지도할 때 이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언어와 감정표현에 서투른 남자 아이들에게 '너는 어떻게 느끼니' 라고 묻는다면 아이들은 흥미를 잃고 난감해 할 것이다. 그보다는 '그래서 이제 뭘 하려고 하니?' 라고 묻는다면 훨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여자 아이들을 지도할 때 아이들의 감정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체계적인 답변이 요구되는 질문만을 계속 퍼부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만큼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자신의 감정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의 질문에는 대답 의지보다는 회피 욕구만 갖게 될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소심해지는 경향이 크다고 하는데, 이를 충분히 배려하면서 사려 깊게 지도해야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 전에 인근의 중학교로 수업을 나간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 스무 명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끌어 구성한 과학 수업을 했었다. 그때, 학생들은 발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고 앉아서 말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어해서, 수업 진행이 쉽지 않았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서로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자유롭게 말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더 재미있게 진행되는 수업이라고 수시로 격려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몹시도 부끄러움을 탔고 자신이 적어놓은 것도 자신 있게 읽지 못했다.


  다른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여학생들과 과학 수업을 하는 것을 참관한 적도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나름대로 학교에서 '과학 영재'로 불리는 아이들이라 했다. 그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무척이나 적극적이었고 체계성을 따지며 들어야 하는 복잡한 이야기에도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사실 나는 그 중학교 3학년 학생들과 내가 수업한 학급의 학생들을 내심 비교하면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이라 발표력도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여학생이었기에, 이들이 유난히, 다른 이들과 자신이 비교될까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학이라는 영역 자체가 체계성을 따지는 학문이기 때문에, 아무리 쉽게 접근하며 수업해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친숙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요하는 과목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지레짐작 때문에 내적 동기 유발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중학교 3학년 학급의 그 여학생들은, 과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남성적 뇌의 특징을 가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다루는 수업이므로 내적 동기도 충분히 유발되고, 익숙한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수업이었기에 더 집중하며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1학년 반의 수업을 할 때,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표'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해 보자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진행했더라면 학생들의 집중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내가 진행했던 수업의 컨셉이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 수업이었던 만큼, 좀 더 그들의 '성'을 고려해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편적인 성차를 충분히 고려하되, 반대 성의 뇌를 가진 17%의 학생들의 지도에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교사는 평소에 아이들의 성향을 잘 파악한 뒤, 보편성과 개별성을 모두 충분히 고려한 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이해하게 된 아동의 성차를, 현장에서 학생들을 이해하고 바르게 지도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분명히, 어려움이 닥치는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올라 내게 지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잘 안다고 꼭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잘 아는 것은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의 필요조건이다. 성차에 관련된 연구 결과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예비초등교사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하게 되는 교육 활동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항상 더 많지만 말이다.) 훌륭한 초등교사, 초등교육 전문인이 되려는 노력은 평생 그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6. 22:52

Danse Macabre



 

  스트레스가 심한 날, 옥죄어오는 스트레스의 압박에 저항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마련해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냥 음악이 아니라, 활로 켜는 현악기의 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내어 주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들이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같은 음악들. 그리고 이 까미유 생상의 Danse Macabre도, 내가 가슴이 답답할 때 즐겨 듣는 음악 중 하나다.
 

  모든 악기들이 각자의 독특한 음색을 갖고 있지만, 바이올린이라는 현악기가 지닌 음색이 힘겨운 내게 건네는 위로에는 여느 다른 소리들과는 다른 묘미의 '저미는' 것이 있다. 아픈 곳을 가만히 울리고 증폭시켜 청승맞은 눈물을 내어버리기 보다는,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현실 속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이 가슴을 어느 정도 도려내도록 놓아두게 하는 데서 오는 묘한 안정감이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때의 느낌을 언어로 형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어라는 매개 기호물이 지니는 본래의 한계 탓인지, 나의 거친 구사력 탓인지 분간할 길이 없지만-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온 몸의 반응과 감정의 동요는 정말이지 고유하고 특별한 미감이다.


  Danse Macabre, '죽음의 무도'라는 뜻이다. 작곡자의 생각에는 관심 가지지 않고 일단 나에게 느껴지는 대로만 받아들이는 데 습관 들어 있다가, 감상문을 쓰려고 자판을 잡으면서 갑자기 이 표제에 관심이 생겨 검색해 보았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추상적인 감각으로만 존재하던 느낌이, 갑자기 생동감 있는 시각적 영상으로 발현된다. 피아노 소리(목금으로 연주했다고 하는데, 내가 주로 듣는 음원에서는 피아노로 반주된다)는 타건이 유난히 굴러가는 듯 튀어대어, 뼈들이 부딪치는 소리 같다. 깜깜하고 습습한, 서늘한 묘지에서, 죽음의 신의 신호에 이끌리듯 뛰쳐나와 해골들이 흥청흥청, 춤추는 모습. 바이올린 소리의 유연한 격정이 더욱 그들을 무아지경으로 이끄는 듯하다. 산 사람들의 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미감이 있다. 죽은 자들의 무도를 지켜보는 내 얼굴에 미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둥둥 떠오르는 듯한 분홍빛 기쁨과 즐거움은 없다. 그러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쾌감과 황홀경은 하얗게 빛을 발하는 뼈대로 남아 격정적으로 춤춘다.


  나는 Danse Macabre의 선율을 따라가며, 앉아있던 의자에 몸을 쭈욱 기댄다. 눈을 감은 나의 몸은 어느덧 존재를 잊고, 영혼이 박차고 음률 속으로 뛰쳐나간다. 나의 영혼도 죽은 자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하얗게 빛나며, 째질 듯 흩날리는 현악기의 파장에 휩싸여 차가운 춤을 춘다. 이미 흠뻑 취해버려, 도저히 그 춤을 끝내고 싶지가 않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한 시간 쯤 지난 것 같다. 어느덧, 도려내어진 한 쪽 가슴 속으로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2. 17:09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마지막 미술실기 강의. 첫시간부터 시작되었던 고민은 마지막까지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은 한 학기 내내 욕만 하다가 끝난 수업이 되었다.

이전 미술실기 수업이었던 미술실기2의 교수님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이번엔 정말 에이투 제트, 불만 뿐이었다. 아주 조금 얻은 것도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일부분이야. 내가 진짜 어디에서든 장점을 찾아내는 눈이 있기 때문에 찾아냈다고밖엔 봐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결국 나는 강의평가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몽골에 다녀오자마자 날 기다리고 있던 성적을 보기 위해 강의평가를 해야 했는데, 다른 강의평가는 평소와 달리 아주 대충 (...) 하고 넘어갔으나(성적을 빨리 보기 위해 =_ㅜ) 미술만큼은, 진짜 한참동안 잡고 앉아서 글을 썼었다. 결국은 200자 제한 때문에 매우 강도가 낮아진 비판만 넘기고 말 수밖에 없었지만. 그 rough하기 짝이 없는 강의평가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_-




  과제물 평가 기준은 철저히 교수님만의 것(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특히 문제)이었다. 학생들의 개성이나 미적 감각의 다양성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고, 교수님의 생각에 맞출 것을 강요했다. '점수를 잘 받으려면' 창의력보다도 일단 크기, 화려함 등에서 '눈에 띌' 것이 요구되었다. 특히 어머니께 부탁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무엇을 평가하시려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획일적 기준에 맞춰 완성도 있게 표현하는 작품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 더 중요한 목표를 가지는 초등미술교육의 성격에는 전혀 맞지 않는 강의였다. 특히 우리 분반은 전에 '점, 선, 면, 양'을 주제로 한 번 수강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 학기에 좀더 그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더 깊이있는 이해는 불가능했다. 첫시간에 나누어주신 이론자료는 매우 거친 번역본이라 주의깊게 정독하여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수준이었으며, 수업 시간에 각 요소의 특징을 깊이있게, 통찰력있게 언급하신 적도 없다. 한 학기동안 실기 한 과목을 수강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상당함을 고려하면, 같은 내용을 수강하면서 더 깊은 이해도 할 수 없었다면 우리 분반 학생들에게는 사실상 많은 손실이었다.
  
  초등교육을 아시는 교수님인지 수강 내내 의문스러웠다. 학생들의 작품을 줄세워 낫고 못함을 절제되지 못한 언어로 공개적으로 따졌던 평가 방법에도 모든 학생들이 불만을 가졌다. 초등미술교육에서 우열을 가리고 줄세우는 방식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하며 미술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함은 자명한 것인데도, 우린 이런 방식으로 평가받았고 그 절차 중 교수님께서 공정치도 않은 기준으로 학생들의 작품을 깎아내리고 비하하는 발언을 그치지 않으시어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했다. 우열은 가려야 하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에 따라야 하고 적어도 '미술' 수업시간에는 '우열'이 있다는 의식과 열등감 등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런 인식이 미술을 싫어하는 아이를 만들고 자유로운 의식의 진행을 막는다.

  수업 준비물의 경우에도, 지금까지는 교수님께서 특정 준비물의 공동구매를 지시하거나, 혹은 교수님께서 직접 준비하시는 등의 방법이 활용되었고 학생 개인 준비물에도 충분한 안내가 있어 준비 비용에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알아서 준비'해오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가 사실 너무 방임적이어서, '좋은 학점'을 위해 아주 비싼 재료를 동원하는 학우들도 많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준비물 준비에 들어간 비용이 이번 학기만큼 컸던 적이 없다. 각 조형 요소를 이해하게 하려면 한정적 재료를 갖고도 충분히 깊이있게 이해하도록 강의가 진행될 수 있었을텐데, 정작 본질을 파고드는 데는 소홀하였다.









  아무튼, 이번 교수는 진짜 개념이 없어도 한참 없는 사람이었다는 걸 아주 부드럽게 적어놓은 거임. 저기다 못 적은 것도 많아. 체형이 통통한 여학생이 좀 늦게 온다고, '걔는 살이나 좀 빼라고 그래라, 그러니까 빨리 못 움직이고 늦지' 따위의 발언을 하는 건 예사. 큰 것, 반짝이는 것, 화려한 것, 돌아가는 것, 움직이는 것이면 무조건 좋아했으며, 학생만의 독특한 생각 따위는 항상 무시했다.
 

'이런 걸 **라고 만들었냐? 이런 걸 시장에 갖다 내 놓으면 누가 사 가겠냐? 상품가치가 없잖아 상품가치가!'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이런 걸 만들어 놓으면 야구 빠따 감이었어 임마'
'내가 언제 이렇게 하라고 했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시키는 대로.'
'저거 봐라, 내가 진작 말하는 대로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끝까지 저렇게 하다니. 당장 내려!' .......


  아....... 어록을 만들자면 진짜 끝도 없겠다. 그걸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비판할 여력도 없다. 초등미술교육의 관점에서 비판하자면 정말로 더욱 끝이 없다. 


  예전 교수님은 초등교육을 학부에서 전공하신 후에 유학을 다녀오셨기 때문에 초등교육, 그리고 미술 '교육'의 관점을 정말 명확히 갖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교수님 밑에서, 10여년 간 잘못된 교육을 받으며 뿌리깊게 내 안에 자리잡았던, '미술' 자체에 대한 왜곡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느꼈고, 교육의 관점에서 미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관해서도, '실기' 수업이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별한 기법적 특훈을 받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실기 능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관점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론적으로 주입시킨 적도 없으셨지만, 그 때 조근조근 알려주셨던 화가들이며 사조들, 우리 미술에 대한 지식들은 '느낌'과 '생각', '통찰'의 자취로 마음 속에 선연히 남아 지금도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의 발을 낳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 것. 이것 자체가, 정말 10여년 이상의 세월동안 내게 전혀 불가능했던 생각이었기에 내게 일어난 변화는 특별한 것이었다.

  ...... 그에 비하랴. 미친 교수.





  그래. 그럼에도 얻은 걸 좀 정리해보자면 이 정도가 있을 거다.

  취미 생활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가 됐어.
  그래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미감을 계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

   수업 준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와서 막말만 하다가 가고, 대놓고 '인터넷에서 찾아서 해 오란 말이야' 라고 떠드는 통에, 인터넷 검색 기술은 늘고 또 늘고. 평소엔 검색해 볼 기회가 없었던 키워드들로 검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사례가 많다. 

  - 선 조형 포트폴리오 기간 : 와이어 공예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생각보다, 훨씬 예뻤고 실용적이었다.
  - 면 조형 포트폴리오 기간 :건축과 학생들은 항상 설계와 모델 제작에 쩔어서 살지.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고 한 달이나마 그 고민을 함께해 본 계기가 되었음. 사실, 이래서 초등교육과가 만능이라는 거다.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 어찌 전문성이 아니라고 하는가. 근거가 빈약해 보이지? 그래봤자 깊이는 모르지 않느냐고 말이야. 말하자면 길다. 일단은 패스.
  - 면 조형 포트폴리오 기간 : 종이공예가 취미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하게 자신의 예술적 마인드를 표출하며 산다. 원하는 스타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그것으로 주변을 채우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
  - 양 조형 포트폴리오 기간 : 옷을 리폼하거나, 천조각과 미싱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퀼트, 자수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세계 또한 굉장히 매력적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옷가지며 가방, 소품들을 만들어 직접 사용하는 즐거움은 거기에 빠져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예쁜 천과 실에 열광하고, 그것들을 고르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 사 놓은 옷감과 도구들을 바라보며 창조적 사고를 하고, 남은 천이나 소품들을 보고도 어떻게 하면 창조적으로 센스있게 가치를 살려낼까 고민하는 사람들. 요리의 매력과 비슷해 보이는군.
 - 면 조형 포트폴리오 기간 : 조립 모형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성당 모형같은 아름다운 건축물 모형에 열광하는 사람들. 이들만을 위한 전문 외국 사이트들도 많다. 한 채의 모형을 짓기 위해 몇 달을 투자하고 거금을 들이는 것도 마다않으며, 이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도 꽤 많다는 거. 미술실기 3를 수강하는 과정이 아니었으면 모를 뻔 했지 ....

  그래서 나도 그들이 열광하는 것들에 한 달 씩이나마 열광해보고, 직접 뛰어들어 체험도 해 보게 됐다. 나도 천조각만 전문적으로 파는 쇼핑몰에 들어가서 몇 시간동안 천 사진들을 들여다봤고, 종이공예 도구들을 사고 싶어 안달도 해 봤다. 내 스타일에 딱 맞는 색감과 느낌의 천조각이나 물건을 보면, 그리고 그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걸 발견했을 때는 환장하면서 광클을 해 보기도 했다.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쪽 쇼핑몰에서 '덤'까지 주면서 예쁘게 만들라고 작은 메시지까지 담아 보내주는 물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며 창조의 신을 접신한 적도 있고.


음.......... 그리고, 하루만에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는 능력 무한 업그레이드.

네 작품 모두, 거의 하루 만에 만들어 낸 것들이다. 내가 이런 걸 붙잡고 일주일 한 달씩 공을 들일 시간이 있었어야 말이지. 언제까지 1/2 완성해 오라니 어쩌니 하는 교수 말 다 무시하고 그냥 완성 날짜만 꼬박꼬박 지켰다. 포트폴리오도 두 시간도 안 걸려서 와장창 완성하고 그랬으니까. 미술실기3 따위는 내가 신경써 줄 가치가 있을 만큼 교수가 되어 먹은 인간도 아니었고, 실제로 다른 과제와 공부, 일정 때문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과목도 아니었다. 이 네 작품 다 합쳐 보아야 1학점이었는걸 ;; 개고생해서 만든 한 작품당 0.25학점. -_-.........................

그래서 사실 포트폴리오에 헛소리도 많다. 꿈보다 해몽. 무진 애써서 만든 작품들인 양.. =_= ㅋㅋㅋㅋㅋ 특히 파리가 내 동경의 대상이었느니 적어놓은 세 번째 포트폴리오 ㅋㅋㅋㅋ 내가 읽어도 오그라든다 ㅋㅋㅋㅋㅋ 로망은 무슨 로망 -_- ... 난 유럽에 대한 동경같은 거 품고 사는 사람 아니다 ㅋㅋㅋ 뭐라고 쓰긴 써야겠고 할 말은 없어서 써 놓은 거임. 아... 그런거 진짜 많다... =_= 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비화들을 적으면 재밌을 것 같다. 매우 적나라하군ㅋㅋㅋㅋㅋ

1. 점으로 표현된 조형 : 봄나비 Quartet

  이거 만들던 날, 새벽 4시 반까지 착한 내 동아리 동기 동생 녀석이 함께 핀셋을 들고 깨를 붙이며 도와줬었지. ㅠㅠㅠ 다음날이 동아리 정기연주회라서 둘 다 바빠도 오나전 바빴던 그 때. 난 과제에 허덕이면서도 중간에 선배들이 부르면 나가야 했고, 피로와 술에 쩐 몸으로 어찌 되었건 과제는 해야 했기에 눈물을 머금었었다. 기적처럼 나타나 도와줬던 천사 동기님, 진짜 사랑한다. ㅠㅠ 이번 합숙때 밥 맛나게 먹여줘야지, 진짜.

  새벽 4시 반에 녀석이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밤을 샜다. 잠깐 자고 일어나서 공연 리허설 들어가기 직전까지 계속 모래를 쏟고 풀칠을 했다. 리허설 들어가기 직전에 포트폴리오를 출력하고, 그렇게 첫 프로그램 공연을 올리고, 씁쓸한 뒤풀이를 갔었던 기억. 그 기억이 서린 작품이다. 봐, 제목도. 봄나비 Quartet. 그땐 봄이었고, 우린 봄을 주제로 공연을 했었고, 우리 팀은 Quartet이었어. 머리 속에 온통 공연 생각 뿐이었기에, 작품 제목도 저렇게 나왔었지 ^^




2. 선으로 표현된 조형 : shiny flower stand

  이것도 하루만에 만든 작품. -_- ... 사실 이거 만들기 전 사전 작업은 꽤 길었다. 와이어 공예 책자를 빌리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져 여러 재료를 구하는 데도 만만찮은 돈이 들었다. 처음엔 진짜로 전구를 연결해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전구랑 전선, 콘센트같은 전기 부품들도 철물점까지 가서 사왔었다. -_-....... 그러나 결국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걸 알았고 그냥 장식용 스탠드로 얼버무린 것. 니퍼며 드라이버같은 공구도 없는 상황에서 수위아저씨께 사바사바까지 해 가며 그런 짓을 할 만큼.. 학점의 노예가 아니었기 때문에 -_-.. 게다가 그렇게 만들었다간 소요시간이 3배로 불어나면서도 작품은 더 못나질 게 뻔해서 ㅋㅋㅋ 잔머리의 신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ㅋㅋ

  이거 만들고 세워놓았는데 동기 한 명이 자기 동아리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울면서 막 들어왔었어. 한 시간 정도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진정시켜주고 하느라 맘도 씁쓸하고 같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그 녀석은 제가 만들던 와이어 고양이를 완성해야 했고, 거의 못 한 상황에 불려나갔던 거라 더 힘들어 했었지. 결국 몸체까지 만들지는 못하고 머리만 만들어 갔었고.. 이랬던 그날 밤의 기억이 서린 작품. 지금은 우리 집 TV 옆에서 제 자리를 찾은 녀석이다.




3. 면으로 표현된 조형 : the Eiffel Tower

  이것도 하루 만에 만들었음. 하루 만에 만들지 않은 작품이 사실 없음. 아....... 기존 모형을 본따서 만들었기 때문에 창조성 제로. 하지만 제일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그래서 난 이 미술교수를 더 싫어해. 나에게 좋은 소릴 하든 싫은 소릴 하든, 그건 내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사실 내게 나쁜 말을 한 적은 별로 없다. 내 작품에 대해 혹평을 한 적도 없고. 하지만, 난 그 인간이 내게 어떤 평가를 내리든 싫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창조성이 제대로 평가받은 적도 없고, 내 창조성이 전혀 깃들지 않은 작품에도 좋은 평가를 내린다면, 그 사람은 어쨌든 이 분야에서 수준 미달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난 정말로, 직위나 나이 따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능력과 됨됨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서..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암튼 진짜 허섭하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자르지 않아서 딱딱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에, 스티로폼 전용 풀로 매끈하게 붙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걸 완벽하게 맞추려고 하루 이상을 들이며 끙끙대는 대신, 난 보이지 않게 스카치 테이프를 쓰는 편법을 썼다. 물론 들키지 않았고, 검사만 받고 이 작품은 내 방에서 알아서 자연분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오며가며 밟기도 했고, 점점 무너져내리는 꼴을 끝까지 보지 않고, 결국 난 내 손으로 완전히 없애버렸다.



4. 양으로 표현된 조형 : Natural Vintage Blue Jeans Bag

  그래도 나름 애정이 깃든 작품이다. 재봉틀만 있었어도 단단하게, 더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두꺼운 청지를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박는다고 진짜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 스타일이 깃든 작품이라 정이 많이 간다. 이 작품을 위해 애꿎은 엄마 청바지 한 벌이 희생했다. 엄마는 안 입는 거라고 하셨지만, 사실 내 맘이 괜히 많이 아팠다. 
 
  양 조형 평가때 애들이 가져온 작품들은 진짜 가관이었다. 엄마들이 아주 그냥... 총동원 되었더라. 못 봐주겠더라. 완전 기성품 수준에, 애들 손은 전혀 가지 않은 게 정말 티가 났다. 엄마께 죄송하고 부끄럽지도 않냐, 못난 놈들아. 나보고 입는 옷 괜히 찢은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던 언니 얼굴도 생각나는군. 언니야 뭐 항상 그런 식으로 사니까. -_-.... 학점의 노예 같으니 ...... -_-

  이 수업에서 난 양심따위 지키지 않았다. 지켜줄 필요가 없는 부분은 나도 지켜주지 않았다. 난 정말... 가차없는 사람이란 걸 느꼈어. ㅠㅠ 서열을 매길 수 없는 이 작품들에 혹평을 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걸 저도 깨달았던지 교수는 조용히 혼자 '점수를 매겼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나만큼 자기 색깔이 묻어나는 작품을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혼자 착각했지만, 어쨌든 Best input 뿐, Output 은 기대하지 않는 내 원칙에 따라 그냥 신경을 껐다.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으면 된 거였다. 집에 가면 천조각으로 나만의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 살림 할 때에도 알뜰하고 센스있게 '이런 짓'을 많이 해 보고 싶다는 동기가 불끈 불끈 생겨난 것만으로도 수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다사다난했던 '1학점'짜리 마지막 미술실기의 성적은 비쁠. 지금껏 미술실기 에이쁠을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었건만. 결국 이 인간은 내게 비를 날리는구먼. 이번학기 과목들 중 최저이기도 하다. 이번에 수강한 과목 10과목 중 비는 유일하게 미술실기 한 과목에서만 출현. 

  아무튼 무념무상이다. 결과에 대한 감정은 없다. 되먹잖은 교수가 준 점수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나도 그만큼 열심히 학기 내내 보이지 않는 보복을 했으니 되었다. 

 
아......... 힘들어
이것으로 미술실기3에 대한 종합을 마치고자 한다. 그만! 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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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2. 15:39

양으로 표현된 조형

 


제출일 : 2009년 6월 8일





제목 : Natural Vintage Blue jean Bag

재료 : 청바지, 천(cotton), 비즈, 실, 코르사주

크기 : 37 cm × 8 cm × 69 cm





작품과정






초기과정1

청바지를 적당한 길이를 남기고 자르고, 비즈와 코르사주, 면실로 여자 얼굴 모양으로 수를 놓았다. 필요한 부분의 솔기를 뜯어 뒤집은 후 올 풀림 방지 처리를 끝낸 안감을 대어 시침핀으로 고정하였다.












중간과정2

안감을 고정한 뒤 옆단, 아랫단을 박음질로 붙이고 잘라낸 바짓단의 옆선 부분을 잘라 묶어 가방 끈을 만들었다.














최종완성

가방끈 두 개는 올을 자연스럽게 풀어 멋을 살리고 올 풀림도 방지한 후 박음질로 가방 몸체에 고정한다. 그 후 천으로 만든 끈과 안감 천과 같은 재질로 만든 리본 모양 장식으로 데코레이션을 주고 마무리한다.














느낀 점

  만드는 내내 재봉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손바느질로 두꺼운 청지를 다루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내 손으로 내 스타일의 가방을 만드는 기쁨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평소에 '이런 스타일이 나에게 어울린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 좋다'는 식의 감각을 나름대로 갖고 있는 편이었는데, 기성품 중에서 그런 물건을 골라내는 것도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이렇게 내가 원하는 느낌을 살려서 자유롭게 만들어내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가방을 갖게 되는 일은 정말 특별한 기쁨을 주었다.

  평소에 자연스러운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살리고자 했다. 청바지 솔기나 재료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바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절대로 대량생산 할 수 없는 나만의 무늬도 새겨 넣고 싶었고,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멋을 주는 데코레이션을 하고 싶었다. 이 가방에는 전체 분위기에 맞는 안감의 선택과 작은 부분의 디자인까지 나의 고민이 지나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탄생한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만의 가방이기에, 정말 애정이 많이 가고 소중하다.





재료적 측면

  청바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청바지가 본래 지니는 멋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이 청바지는 옆선에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가방 몸체에도 살리고 끈으로도 활용했다.

  하지만 너무 '바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에 방해를 준다고 판단되어, 흔히 만드는 방향으로 만들지 않았다. 흔히 바지를 입는 모양 그대로의 방향으로 가방을 만들지만, 나는 옆선이 정면으로 가도록 만들고 앞 지퍼가 옆으로 가도록 방향을 바꾸었다. 방향의 전환은 가방의 앞뒤 주머니 배치가 같도록 하여 어느 쪽으로 매어도 괜찮은 대칭형을 가능하게 했다. 끈을 만들 때도 이런 부분을 고려했다. 옆선을 뜯어서 끈을 만들었지만 옆선 무늬의 길이가 부족해 양쪽 끈 모두를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통 청지로 만든 끈과 옆선 무늬가 들어간 끈을 각각 가방의 양쪽에 붙여 두 끈이 십자 모양으로 꼬이게 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옆선 무늬가 보이기 때문에 예쁘고, 어느 한 쪽의 가방 끈이 어깨에서 떨어지더라도 각 끈이 모두 가방의 양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며 어깨에서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 실용적인 가방이 완성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을 고려해 데코레이션의 재료 선택에도 주의했다. 안감은 전체적인 빈티지 느낌을 더욱 잘 살려줄 수 있는 초콜릿색 체크무늬 천으로 선택했고, 잔잔한 꽃무늬가 박힌 아이보리색 면으로 벨트 부분에 끈을 넣어 아기자기한 맛을 더했다. 청바지 본래의 데코레이션과 어울리도록 여자 얼굴 모양의 수를 놓고 꽃모양 코르사주를 달아 가방 반대편의 무늬 배치와 통일감과 변화감을 함께 주었다.





기법적 측면

  안감의 올 풀림은 끝 부분을 접어 홈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손바느질한 스티치 무늬가 가장 잘 보일 수 있는 위치에 배치될 것이어서 천과 실의 색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모양도 예쁘도록 바느질 간격에 특히 신경을 썼다.

  끈을 만들 때는 짧게 자른 두 부분을 묶어 리본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마무리하여 자연스러운 멋을 주었다. 끈은 청지이기 때문에 튼튼한데, 금방 잘라낸 뒤의 상태는 멋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자리의 올을 일부러 풀어서 내추럴 빈티지 스타일을 살리고자 했다. 끈 부분에 어느 정도 올을 풀어 놓으면 더 이상 올이 풀리지도 않고, 오래된 청바지의 멋이 살아나 어깨에 메었을 때 포인트가 된다.

  남은 안감으로 코르사주를 만들어 가방 옆선에 부착하고, 벨트 부분의 끈은 가방 옆선에 리본 모양으로 묶어 마무리하여 자연스러운 빈티지 스타일 가방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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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
초등교육2009. 7. 2. 15:27



면으로 표현된 조형

 

제출일 : 2009년 5월 18일










제목 : The Eiffel Tower

재료 : 우드락

크기 : 22cm × 22cm × 53cm




내용 설명

프랑스 파리는 오래 전 내 로망의 대상이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데, 외국으로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프랑스 파리를 주저 없이 꼽았었다. '프랑스 문화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프랑스와 파리에 대한 일종의 '환상'은 깨졌지만, 그래도 프랑스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에 가 보고 싶은 소망은 여전히 건재하다. 꽃의 도시, 빛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매력적인 도시 파리의 상징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1889년에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인 이 에펠 탑이다.

파리의 공기의 일부를 내 방으로 끌어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국으로의 여행이 주는 설렘을 자극하는, 크기는 작지만 풍부한 에너지를 지닌 구조물을 우드락으로 만들어 보았다.




과정에서 느낀 점

실제 에펠 탑의 형상을 빼닮도록 해야 했기에 사진의 축척을 재고 실제 건축물을 단순화시켜 설계하는 작업에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복잡한 구조를 단순화시켜 표현하여도 에펠 탑 본연의 웅장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떻게' 단순화 시켜야 할 지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다. 에펠 탑의 곡선미를 우드락의 평면적 요소만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생각하는 과정도 도전적인 과제였다.

처음에 에펠 탑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자신 있었지만 실제로 도면을 그리고 만든 조각들을 붙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정확하게 그리고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조각을 붙이다 보면 이리 저리 어긋나기도 하고, 기울어지는 부분 때문에 안정적으로 접착제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도 했다. 제작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경험은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할 때 부딪칠 문제들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재료적 측면

우드락은 다양한 두께와 색깔로 판매되고 있어 작품의 방향에 따라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우드락은 무른 편이기 때문에 칼을 사용하는 요령이 있다면 다루기에 아주 까다로운 재료는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손톱 등의 작은 압력으로도 훼손되기 쉬우므로 보관과 운반, 제작 시 취급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우드락 전용 접착제를 사용하면 우드락과 우드락을 깔끔하게 붙일 수 있다. 접착 강도는 꽤 강한 편이지만 붙이기 전에 사포로 절단면을 매끄럽게 다듬어야 접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기법적 측면

우드락에 도안을 옮길 때는 종이에 그린 도안을 올리고 연필로 스케치했다.

직선을 자를 때는 자를 대고 칼을 수직으로 세운 뒤 되도록 한 번에 힘을 주어 잘라냈으며, 곡선도 되도록 칼의 수직 각도를 유지하고 한 번에 잘라내어야 절단면이 깔끔했다.

칼은 자주 갈아주어야 우드락이 지저분하게 잘리지 않았고, 절단면을 사포로 갈아주어야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접착제를 바르고 두 우드락을 붙일 때 불안정한 경우에는 접착제가 안정될 때까지 손으로 우드락을 지그시 누르며 잡아주면 접착에 도움이 되었다.

조각의 크기가 맞지 않아 수평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다른 조각을 올리는 데 문제가 있을 때는 사포로 수평이 될 때까지 갈아낸다. 조각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칼을 사용하는 것은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어 버릴 수도 있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포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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