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슬기야”…긴장과 배탈로 발목 잡혀 | |||
[경향신문 2008-08-14 18:45] | |||
믹스트존 멀리서 정슬기(20·연세대)의 모습이 보인다. 곱슬한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기쁜 얼굴로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하는 가운데 그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고 있었다.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았다면 아까 좀더 쏟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담긴 듯한 걸음이다. 정슬기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수건으로 반쯤 가린 그 얼굴에, 붉어진 그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지친 발과, 지친 몸과, 지친 머리가, 무엇보다 답답한 가슴이 정슬기의 눈물에 담겨 있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어 건넨 ‘힘 내라’는 말에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채 정슬기는 속으로 후회와 분함을 삭이고 있었다. 14일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 평영 200m 준결승. 2분26초83. 예선 기록 2분25초95에도 못미친 기록. 믿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훈련할 때 정슬기의 시뮬레이션 예상기록은 2분22초대였다. 아시아기록 2분22초99를 뛰어넘어 충분히 메달을 기대할 만한 성적이었다. ‘여자 박태환’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몸이 정상이었더라면, 긴장을 조금만 덜 했더라면 또 한 번 한국 수영의 새 역사를 장식할 수 있었다. 배탈이 발목을 잡았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열이 나고 배탈에 시달렸다.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음식을 잘못 먹어서가 아니라 너무 긴장을 한 탓이었다. 그 예쁜 이름 ‘슬기’처럼, 마음이 너무 여렸기 때문이었을까. 훈련 욕심도 문제였다. 기록을 더 올리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훈련을 한 게 결국 약간의 오버페이스를 낳았다. 여전히 목이 멘 채 훌쩍이는 정슬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리고 싶냐고. 잠시 생각하듯 울음을 그친 정슬기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수영에, 올림픽에, 그리고 인생에 ‘만약’이 존재한다면, 그 눈물은 당연히 없었을 게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걸 정슬기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믹스트존을 빠져나간 정슬기는 결국 대표팀 우원기 코치의 품에 안겨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믹스트존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때 밖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중국의 류즈거가 여자 접영 2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래, 지금 울 필요는 없다. 4년 뒤 런던의 저 환호는 슬기의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대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베이징 | 이용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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