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everydaylife2009. 11. 3. 21:45



10월 말에 끝난다고 했던 공사가, 11월이 되었는데도 끝나기는 커녕!
아직도 신경을 싹싹 긁어놓을 정도로 시끄럽다.
학생을 위한 학교인지, 정말 의심스럽게 만드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1학년 때 살던 기숙사 앞에, 예쁜 단풍나무 하나가 있다.
내가 아끼는 나무 중 하나다.
여름이면 참 '맑게도 푸른' 빛을 발하며 그늘을 지우고,
가을에 드는 선홍빛 물이 정말로 찬란하게 아름다운 나무다.
어떤 날에든, 이 나무에서는 언제나 빛이 났었다.
심지어는 비가 오는 날에도.
추위가 오기 직전에,
가을이 가기 직전에,
그러니까 아주 꽉 찬 늦가을의 어느 날에
내게 이 나무가 말을 건넨 적도 있다.
그 날에는, 하얀 바닥에 떨어진 낙엽조차도 눈부신 그림이었다.
그 날의 이 나무를 보고 찡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던 이 나무가,
지금 2개월동안 시달린 공사 소음 때문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엄청난 한파가 닥쳐오는데도,
단풍물이 드는 둥 마는 둥, 잎들은  아주 보기 싫게 얼룩덜룩하다.
어떤 잎은 단풍물이 들대로 들어서 쪼그라들고 말라버렸는데,
어떤 잎은 아직도 썩은 녹색이다.




아니다, 절대로 이렇지 않았다.
지금같이 흉측한 몰골이 아니었다.
네가 말 못하는 식물인 것이 죄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도 남았을 일이다.
하긴, 말 할 줄 아는 학생들 앞에서도 그러는데 뭐.
식물도 저렇게 변해버렸는데, 우리라고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부터도 예전부터 계속 느껴 왔는걸.




곱게 살고 싶다.
주파수가 높은 '사람'의 목소리에도 반사적으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어버린,
내 푸석푸석한 청세포가 슬프다.
예전처럼 새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고 싶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가 공사장 돌 부수는 소리인 것,
그래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웃으며 일어나지 못하고,
온 몸을 웅크리며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일어나야 하는 것,
정말로 이제는 참을 만큼 참았는데.  
불가피하게 학기 중에 공사를 해야 한다면 약속일 안에 끝내야지, 정말 이건 아니야.




이거 참,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학교를 대상으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는 요구라도 하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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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