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치과 치료가 끝났다. 치과에 가려고 시내로 나가는 김에 맛있는 걸 먹자고, 친구를 꼬셔서 함께 나갔었다. 우리는 완전히 만족해서 돌아왔고, 무척이나 행복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고, 우린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음식점에 들어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서 조그만 지퍼백을 샀고, 샐러드를 싸오기까지 했다. 우리 학교에 살면 이렇게 되는구나, (...) 하고 실없이 웃으면서 말이야. 많이 싸온 것도 아니고, 먹고 싶은 것들, 맛있었던 것들을 조금씩 가져온 것인데, 원래 이정도는 먹고들 가기 때문에 나쁜 짓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 살면서 이런 먹거리를 좀처럼 볼 수가 없었던지라, 이번 학기에 처음 큰맘먹고 맛난 음식을 먹으러 나온 우리는 완전히 흥분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오고, 이색적인 먹거리를 오래오래 즐기고 저장해놓고 싶은 마음에 우린 귀여운 악마짓을 한 것이지.
돌아오는 길에 커피 한 잔을 사 마셨다. 편의점에서 산, 600원짜리 블루마운틴 원두커피 티백을 컵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부은 것인데, 장갑을 낀 손으로 잡고 있으니 어찌나 따뜻하던지. 그리고 그 향은, 또 얼마나 그윽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들른 편의점에 진열된 각종 물건들은 작년의 기억을 휘감아왔다. 물론, 손에 든 원두커피향도. 버스가 도착했을 즈음엔 커피가 알맞게 식어 딱 마시기에 알맞은 온도로 맞추어졌다. 그 뜨끈한 것을 목 뒤로 넘기며, 온몸이 노곤하게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동시에 설레어오는 심장도, 또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한 떨림도 살아나는 것이다. 프림이 들어간 커피믹스를 마시면 입이 개운하지 않기도 하고 금방 배가 아프면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고, 또 무엇보다도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어대서, 그것도 정신은 더욱 피곤해지면서 몸만 힘들어지는 그런 각성이 오기 때문에 잘 마시지 않았었다. 하지만 원두커피는 그렇지 않았다. 카페인도 적고, 향이 충만하며 깔끔하고, 마셔도 몸이 피곤하지 않고 아주 적절한 정도로 정신이 명료해진다. 커피를 사랑하고 싶은데, 집에는 커피믹스 다발만 쌓여있어 안타까울 적이 있었다.
적당한 카페인 기운으로 명료해진 정신으로, 사랑하는 우리 동기들과 동방에서 기타를 쳤다.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고 모자란 소리를 여실하게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맞지 않는 소리 밸런스를 조정해보기도 하며 한동안 집중하고, 또 떠들며 놀기도 하고, 그랬다. 내일 두 시에 만나 마지막으로 연습하자고, 다시 만나자며 기분좋게 외치고 들어왔을 때가 10시 30분 무렵.
화장을 지우고 주변을 정리한 뒤 피곤한 피부를 좀 돌봐 준 뒤, 음악을 들으며 스케줄을 정리해 보았다. 음... 폭풍전야였다. 엄청난 할 일들... 그래도 예전처럼 갑갑해오지 않는 것은, 나에게도 드디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내일 할 일을 일찍 끝내면, 나를 위해, 시험 기간을 함께할 원두커피를 구매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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