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행로가 어떻게 되어 갈까.
이렇게 버티어 내고,
3학년이 되면 또 나름의 피곤한 일들이 생기겠지.
그리고 임고생이 될거야.
기나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에 익숙해져야 할 테지.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자면 감당이 안되고 피곤해서,
나는 요즈음, 그저 감각적인 것에 탐닉하곤 한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한, 강의실 가는 길.
구름 속을 걷는 기분.
중국 단풍에 물이 들기 시작하면,
가을은 한꺼번에 왔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했는데,
이런 이제 진짜로 중국 단풍 나무가 하나씩 불타기 시작하는구나.
날씨는 차고, 세상은 몽환적으로 아름답다.
다시 향기를 애타게 찾는다.
시향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곳을 잠깐 원망하며,
인터넷에 묘사된 향기의 이미지만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서랍 속에 꾹꾹 처박혀 있던 향수 샘플들을 새삼스럽게 꺼내어 본다.
먼저 뿌린 향수의 잔향이 남은 옷자락에 다른 향수를 칙 입혀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향기가 메마른 내 마음을 이따금씩 달래주곤 한다.
지루하고 힘들어지면 나는 또 다른 종류의 향수를 같은 곳에 뿌리게 될 것이다.
매일 대충 입고 다니다가,
오늘 동번모임에는 그래도 조금 신경을 썼다.
그래보았자 구두를 신었다는 것 외에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 말이다.
아, 오랜만에 귀고리를 했다는 것도.
아주 흥분하면서 골라 사 놨던 예쁜 귀고리들을 보관함 속에 고이 감춰만 뒀다가,
이제 겨우 하나, 새 걸 해 보았다.
그동안 귀에 상처가 났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뚫었던 곳이 아직도 좁을 거라는 이유로 내게 작은 즐거움 하나 허락할 여유도 갖지 못했다.
기하학적인 모양을 가진 은제 큐빅 귀고리.
이걸 고를 때 내가 아주, 아주 흥분했었지.
추상적인 형태에는 클래식하고 우아한 미감이 있다.
자연 환경이 척박한 곳에서는 광막한 외부세계가 인간에게 끊임없이 내적 불안감을 일으킨다.
이 때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추상이 발달한다.
현상계를 초월한 추상에, 나는 자주 매료된다.
이 녀석이 살짝 귀에 앉은 것 뿐인데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는 저 안에 숨어 있던 우아한 기품과 지적인 신비감이 흐른다.
요즈음엔 마음이 힘든 일들이 어찌나 많이 생기는지.
너무 자주, 많이 일어나서
그 때 그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억지로라도 밀어내어 잊어버리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지도 몰라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그런' 일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 생긴다.
그럴 때면, 클래식 음악들을 닥치는대로 듣는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이야기에 심각하게 공감하면서 브람스의 음악들에 빠져든다.
한참을 들으면서 할 일을 뭐라도 하고 있다 보면 어느 새 힘들었던 일들을 잠시 잊는다.
꿈에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종종 떠올라 날 괴롭히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순간만큼은 어쨌든 잊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데리고 있는 인형들도 사랑스럽지만
새로운 녀석들이 눈에 띄어서 자꾸 또 데려오고 싶기도 해.
하지만 난 너희들이 좋아.
오늘은 듣던 음악을 그대로 틀어두고 방에서 나오기도 했다.
사랑스런 이 녀석들, 나도 없이 조용할 때 편안하게 좋은 음악 들으라고.
아아, 피곤해.
좋아하는 향기가 나는 바디 샴푸와 뜨끈뜨끈한 물로 몸을 씻고,
같은 향기가 나는 바디 로션으로 몸을 감싸주고 들어와야겠다.
그러면 맑은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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