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everydaylife2008. 12. 20. 01:05






아까 마구 올라오던 격앙된 감정이 겨우 가라앉았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찬양하지 않는 선생님을 욕하려는, 그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전교조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멋있는 양 글을 휘갈겨놓은 친구의 글을 보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났던 터였다.
교육 비전공자인 친구의 관점은 개인적이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해서, 그동안 비슷한 이유로 날 갑갑하게 했던 일들까지 모조리 올라오게 했다. 누구나 교육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는 있지만, 이건 아니었다. 무개념스런 그의 발언도 발언이었지만, 결국은 예의 그 자기애 인격장애로 귀결되는 그의 전형적인 논리 전개에 넌더리가 났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한시간동안 갑론을박하고 싸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내 성격상 토론이 시작되면 싸우려 들기보다는 참아가며 말하느라 얼굴만 벌겋게 되겠지만. 잘난 척하며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쳐대고, 그러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또다시 증명하려 들려는 그 면상을 정면으로 대하고, 그 표정이 무너지는 걸 내 목전에서 똑똑히 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으나.. 겨우겨우 가라앉혔다, 정말로 겨우. 저 하고 싶은 말 지껄이는 것에 내가 이런 식으로 태클을 걸 수는 없으니.. 직접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이 대목이 나온다면 싸워볼 만 하다. 십중팔구는 먼저 잘난 척을 시도할 테니, 십중십으로 격한 토론을 벌일 수 있을 테다.

어젯밤에는 2년 전에 나에게 담임이 썼던 편지란 걸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2년 전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갑자기 치밀어오는 바람에.. 감당하지 못해 숨이 찼다. 이 꼭지로 글을 쓰면 또 얼마나 긴 포스트가 될까. 단상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것들이 자꾸만 밀어닥쳐서, 도저히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간 제한이 있는 일들이 사라진 요 일주일 동안, 나의 감정은 숨어있던 나신을 참 많이도 드러내었다. 일없이 조용히 앉아있다 보면, 먼지들은 가라앉고 이내 마음의 윗물이 맑아오는 법이다. 그러면 감춰져있던 이것 저것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현현하게 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담임이란 사람은 직업이 의심될 정도의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이 사람이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인지가 의심스러웠다. 끊임없는 비아냥거림, 조소, 빈정댐, 인신공격,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라고는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망언들.. 진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유치한 내용의 글. 이것을 당시 고3이었던 나에게, 그것도 수능을 목전에 둔 학생에게 읽히려 보냈다고 생각하니 아주 그냥 머리가 핑 돌았다. 한동안 고이 접어뒀던 육두문자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려 하는거야. 그리고 세상에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대체 교육이란 게 왜 이런 식으로 행해져야 했는지, 거의 폭력에 가까운 수준의 파행적 교육 속에서 수액을 모조리 빨아먹힌 나의 무기력한 눈동자가 바닥에 내팽개쳐져 구르고 있었다. 잘못 태어난 교사가 폭력적인 사회에 물들어 학생을 죽이고 있었다. 왜 이래야만 했을까...

엄마는 나에게서 아직도 무기력한 원망의 눈빛을 거두지 못하신다. 의대쪽으로 진학하지 못했으니, 미래를 볼 때 먹고 살 수는 있게 만들어 놓아야 겠으니 선택한 것이 이쪽 분야라며, 사실은 그렇다며, 실패자 취급을 하는 그 눈빛. 다 합격해 놓았다가 결정적인 실수로 다 된 농사들을 놓치고, 놓치고 했던 것들이 어쩌면 운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나는 지금의 전공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결국은 허사. 다른 이들의 눈에 비추어 자신의 행복을 평가하는, 그 지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빠진 엄마를 나는 더이상 끌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나의 행복의 기준은 내 안에 있지, 외부에 있을 수는 없는거라고, ..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귀를 꽉 틀어막으신다. 그래도 너는 어려서 모른다는 식으로 일관하며, 그래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업을 가져야 잘 살 수 있는데 내가 지금껏 성취해 오던 것에 비하면 어쩌면 '그래, 아무것도 아닐 지 모르는' 교사의 길을 가는 것이 못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기 그지 없다는 말을 .. 온몸으로.., 온몸으로 하신다. 내가 수능 두 문제를 더 맞고, 그래서 그 모 의대에 최종 최저등급을 만족해 입학했더라면 .., 혹은 내가 점수에 맞춰 서울대의 그 과가 아닌 다른 과로 소신지원이 아닌 맞춤지원을 했더라면. .. 나는 사실 아찔하다. 그 학과에 가서 보아야 할 좁은 세계가 못견디게 갑갑한 것이다. 난 지금의 나의 전공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세상을 사랑한다. 매일같이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찬 세상을 알게 해 준, 알아야 할 것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음을 자각하게 해 준, 교육의 목적과 난점을 고민하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해 준 나의 전공이 고맙고 흥미롭다. 응급실에 실려갈 지경이 되도록 몸을 못 돌보며 공부한 엄청난 내용들.. 그 성스럽기까지 했던 과정에서 머릿속에 스쳤던 수많은 생각들과 깨달음들을 부모님께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몸이 하얗게 불타고 정신만 남아 진리를 찾는 성화를 지피던 밤.. 그 마법과 같았던 시간들을 엄마가 간접체험이라도 하시게 할 수도 없으니.

어디를 돌아보아도 이야기를 제대로 진행할 대상이 보이지 않고, 갑자기 방학인 것이 서럽고, 의식 있는 동기들이나 선배들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며 미칠 듯한 혈기로 토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 어릴 적의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목표지향적인 인간이었는지.. 내 눈으로 내 글을 확인하며 섬뜩하도록 느낀 순간이 있었다. 이렇던 나를 사람으로 만들고자 그 동안의 모질고 잔인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날 담금질했나보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회적 고민 이전에 개인적 차원에서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울분과 고통은 날 괴롭히는 것이다. 그래서, ... 날 사람으로 만든 대신.., 타인들은 여전히 나를 완전한 실패자 취급을 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엄마는 아직도 바싹바싹 말라가고 계시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언제나 불효녀의 죄를 지고 살아야 하며, ... 교사라는, .. 또 이 모든 편견과 고통을 묵묵히 이겨내며 갈 길을 가며 봉사하는, 성직과 같은 길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이 고통은 아마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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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