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훨씬, ... 이라는 부사로도 표현되지 않을만큼 많이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 온 지 3일째인데, 한 일주일은 넘게 시간이 간 것 같다.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루트로 돌아갔다. 작은 일 하나를 하려 해도 누군가에게 어떻게 하는지 물어봐야 하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를 굴려야 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라, 준비해야 할 것도 굉장히 많았다. 이들을 할 때도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라 계속 머리를 쓰고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아야 했으며, 그 일들의 순서도 동시에 생각해야 했다. 최소동선을 순간적으로 설계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빠르게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불쾌한 일도 많이 겪었어.
내가 적응에 이렇게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날부터 미친듯이 쏟아지는 공부량과 과제 때문이었다. 짐이 첫날 도착하지 않아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하고 입고 온 옷을 입고 잤었다. 그 몰골로 겨우 첫 수업에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아주그냥 식겁했지. 이공계의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보통 하는 것들을 나는 죄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모든게 낯설고 challenge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충격적인 것이, 이들이 거의 다 재수강생들이라는 것. 우리 반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두 명만이 처음 듣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재수강생들이었다. 80명쯤 되는 일반 생물학 및 실험 클래스에서, 나를 포함해 8명만이 1학년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2, 3, 4학년이었다. 또, 반절 정도는 화학과 생화학에 강한 약학, 제약과 학생들. 나머지도 화학, 생화학 등을 전공하는, 학년상 선배들. 학점은 20%만 A를 받고, 대부분이 C와 D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배타심을 느끼게 되는, 타대생인 내가 그 대학 학생들이 우글대는 틈바구니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모든 새로운 상황을 마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은 적어도 2년은 과학계열의 제분야들을 피터지게 공부했던 골수 이과생들이자, 바로 이 과목을 직전에 또한 피터지게 공부했던 재수강생들. 나는 1년을 이과계열과 거의 무관하게 살아 감각이 거의 죽어가고 있는 교육 전공 타대생. 학점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물론 학점은 과정에 따른 결과로서 당연히 좋기를 바란다) 남들은 비장하게, 괴롭게 선택하는 어쩔 수 없는 길인데 무려 '재미'로, '자기 만족'을 위해,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제 발로 남들이 말하는 지옥에 들어온 것. 그것도, 대부분 3학점만을 듣는데 나는 6학점을 듣기 때문에 안그래도 힘든 상황이 배가 된 입장이다. 6학점인데 더 지독하게도 수업시간은 8시간이다. 이건 뭐, 고3이나 재수학원 수업 시간 수준이다. 학기중에도 8시간 수업을 연달아 듣는 날이면 완전히 나가떨어졌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었는데도)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냥 머리가 핑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첫날부터 리포트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것도 바로 다음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계절학기니 하루가 일주일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첫날부터 무거운 과제를 받으니 정신이 없었다. 말했지. 아직 택배도 못 받고 어제 입은 옷 속옷도 못 갈아입고 그대로 갔다 온 상태였는데, 무려 리포트 과제를 받은거야. 도서관을 어떻게 쓰는지도, 아니, 외부인이 쓸 수 있기나 한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자료도 전무하고, 당장 방부터 휑한 상황에 말이다. 그리고 이과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조차도 처음 접한 것. 난 이들이 말하는 세미나가 무엇인지 이제야 겨우 알았다. 아니 어제 또 충격을 받으며 알게 되었었다. 보고서를 쓰는 방식도 원래 이렇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검색하다 보니, 다들 그런가보다, 싶다. 예비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실험 결과를 정리함은 물론 Discussion에 아주 공을 들여야 한다. 관련 주제들과 심층 주제들을 스스로 찾아 공부한 후 한 편의 논술에 녹여내어야 하는데, 작은 리포트 수준이다. 게다가 손으로 다 쓰란다. 그림은 점으로 찍어서 그려야 한단다. 작은 부분도 낯설어서 모든 것에 힘이 들었다. 심지어는 보고서를 쓸 때 그네들이 전용으로 사용한다는 패드가 있다는 것도 겨우 알았고, 그것을 어디서 파는지도 물어 물어 알아 찾아갔다. 게다가, 나는 재수강이 아니라는 이유로 개인 보고서 과제를 매일 하나씩 더 떠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세팅된 상황에서 부여받아도 정신없을 것들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생소하여 정신을 못차리는 내 상황에서 부여받았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친듯이 머리를 쓰고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날씨까지 잔인할 정도로 추웠다.
하아.. 짜증나던 상황들과 도지려 하던 내 강박증, 현재 상황에 대한 재인식, 새롭게 마주한 이 상황들에 대한 나의 생각들, 3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수없이 많이 지나갔었는데. 다 기록하려니 내 수면시간이 절실해서 안되겠다. 살짝 두렵다, 이렇게 교감신경을 또 심하게 각성시킨 채 한 달이나 있다보면 또 면역력이 극도로 약화되어버릴까봐. 병원에 실려가면 그냥 F가 나올테니. 정말 그땐 울어도 소용없는 노릇이다. 난 '그래도' 충분히 자려고 노력하고 잘 먹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지난 학기같은 사태를 빚지 않으려면.
다음에 쓰자. 남은 이야기들은.
적응하느라 고생 많았고, 넌 잘 하고 있고, 이제 편히 쉴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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