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피곤하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고, 대견하고 몸도 차가운 나를 위해 따뜻한 두유 한 병과 우유빵을 사 왔다. 목이 칼칼하고 눈도 아파서 더 아프지 않으려면 많이 쉬어야겠단 생각이 드는 중. 몸과 마음이 다소 지쳐있단 증거가 가시적으로 드러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달래려고 이렇게, 음악을 조용히 들으며,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
문득, 우울하고 외롭고 어딘지 모르게 슬펐다.
꼭 이것 때문은 아닌데, 그냥,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들, 나 재수할 때 자주 먹던 음식들이다. 그냥, 몸도 피곤하고 기분도 꿀꿀했는데, 사고 싶은 것으로 딱 생각나는 것들이 이것이어서 별 고민 없이 사 왔던 것. 지금 정서와 몸이 그때와 비슷해서.. 몸이 그 맛을 기억해 낸 건지도 모른다. 편의점의 음식만이 유일한 별미였던 그때, 진열대에 올라와 있던 농밀하고 찰져 보이던 우유빵과 부드럽고 힘을 줄 것만 같은 쏘이빈밀크가 그렇게 끌릴 수가 없었더랬다. 그래서 꽤 자주, 그것도 차암 힘들었던 5월 즈음에 많이 그랬던 것 같은데, 순두유 한 병을 사다놓고 조금씩 마시면서 공부를.. (아니 글을 쓰느라 시간은 항상 날아가곤 했지만) 했었다. 그 와중에도 살이 찌기는 싫다고, 군것질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이따금씩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 밀도 높은 우유빵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기도 하고.. 그랬지.
많이, 정말로 기절해서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은 아직도 아프고 정신도 그렇게 맑지는 않네. 어제 정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몸이 이상한 각성 상태에 있어서, 다른 애들은 금방 쌔근쌔근 잘도 자는데 나는 누워서 깨 있는 애들 하는 말 다 듣고, 너무 더워서 일어났다가 결국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제일 늦게 잔 거지. 이런 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활동들도 했던 1학기가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매일 4시쯤 자면서 과제며 공부를 하고, 그러면서도 웃으며 살다가 결국은 온몸이 고장나버렸던 2학기도 대견하고 안쓰럽다. 실컷 쉬어줘도 될 것 같았는데 다시 고생(..일종의)을 사서 하는 내가 그래, 대견하지만, .. 일단 당장은 힘들고 슬프다고. (..)
이렇게 힘들다가도 집에 가면 하루만에 완전히 풀어지고, 또 이틀만에 내가 한심해질 정도로 무위도식하는 모습으로 금방 탈바꿈할텐데. 그러면 또, 쉰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차라리 공부하고 싶다고 막 좀이 쑤시고 그럴 텐데. 웃기네. ... ㅎㅎ
기분이 이상해. 여기로 돌아오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몰랐다. 왠지, 이번 한달이 2년 전의 1월과 비슷할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아. 아무래도 '혼자'라는 상황이 너무 비슷해. 그래도 모두가 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억압에서 벗어나는 와중에 유망주였던 내가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행복한 상황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중요하구나, 싶다. 아침 일찍 어두운 방에서 혼자 아침 먹고, 차가운 바람 헤치고 삭막한 길을 걸어 두어 명이 있는 좁은 교실로 들어가 히터기를 느끼며 잡히지 않는 공부를 했었다. 그 때 나를 '안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정말이지 다들 날 좀먹는 끔찍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먹히지도 않는, 어떤 말을 해도 나만 비참해지는 그런 말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 너무도 진절머리가 났었어서, 그 시기.. 난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한달간 거의 실어증 환자로 지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고독의 늪, 난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던 날이 있었다. 그 새까만 자판기 커피 한 잔에서 난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손에 잡기가 두려워졌던 공부. 이를 뒤로 하고 난 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글만 썼다. 음악을 가져오지 않았었는데, (내가 자나깨나 음악만 들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외롭고 처절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것이 라디오였기 때문이었지. 처음으로 맘편히 술을 마시던 날도 있었다.(아니.. 술을 마시는 상황 자체는 언제나 그리 유쾌하고 맘 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내자면 또 한참이 걸리겠지. 생략하자.
그때처럼,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고, 내가 아는 사람들과는 다른 상황에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기 힘들고,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 그렇다. 내 몸을 돌보아 줄 사람은 나 뿐이다. 내가 무너지면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가 없는 것. 힘든 것 이겨내려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려 하고, 항상 웃으려 하지만.... 웃음 뒤에서 마주하는 가장 발가벗은 나의 모습은 여리디 여린 아이일 뿐...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그저 울면서 기대고 싶은, 누군가에게 안겨 머리를 쓰다듬기며 조용히 울고싶은.
..... 나 아까, 정말 오랜만에,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눈물 뚝뚝 흘리면서, 슬프게, 슬프게.. 가장 솔직한 내 모습. 모든 것 걷어내고 가장 아래로 내려갔을 때 마주하게 되는, 나의 벗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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