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무렵 문자가 한 통 왔다.
진심으로 할 말이 있다고, 저녁에 시간 내 줄 수 있겠느냐고.
난, 그 문제 때문에 보자는 걸 거라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알겠다고.
그리고 저녁 8시,
비 오는 오늘, 어언 몇 개월만인가-
그래, 만났어.
자꾸 내 쪽으로 오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 몰라, 어쩌면 난 내 쪽으로 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 동안 모두 낯설어졌는지도. -
난 당황해서 계속 피했고, 그러느라 자꾸 빙빙 돌게 됐다.
결국 곧은 길을 걷게 되긴 했는데,-
할 말로, 첫째로는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거듭 했었어.
하지만, 난 귀담아 듣지 못했다.
응. 스쳐가는 말들로, 다 이해는 했다.
하지만, 가슴 깊이 새겨 들으면서 공감하려는 시도는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간 마음이 아파서 이성이 마비될 것 같았기에.
아- 그리고, 그 미안했던 것들, 다시는 안 그러겠........
이런 흐름이라니.
그래. 그래서?
설마 설마 했던 그 말을 정말로 하고 있었다,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잡아도 되겠냐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그 사람을,
난 반사적으로 뿌리쳤다.
'싫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생각해도 참,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말이 안 된다고, 안 된다고. 못 한다고.
난 정말로, 그 때 다 쏟아버려서, 더이상 남은 게 없다고.
- 아, 그래, 이제 줄 것이 없다고.
라는 대답.
솔직한 내 심정은, 이렇게 쏘아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꾹 참았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적어도 2개월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에게서 받기만 해도 상처가 지워질까 말까 할 정도로, 지난 날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고 지냈었는데, 이제 와서 또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내가 너에게 줄 것이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구나, 세상에, 넌 지금 네가 얼마나 이기적인 소릴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네가 네 손으로 놓아버린 축복의 소중함을, 이제와서야, 봄이 와서야, 다시금 새로운 봄을 맞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면서야 더욱 뼈저리게 절실하게 깨닫고, 그렇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 예전의 네가 무슨 능력자였고,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이, 예전의 그것이 엄청난 행운이었음을 모른 채 아직도 그렇다고, 네가 날 가질 만 하다고 믿고 있는데..... 넌 그 시간의 깎아내림 속에서도, 아직도 예전처럼 덜 자란 모습 그대로구나, 어떻게... 지난 날 날 이유없이, 질린다는 이유로 험하게 내팽개쳤던 너 자신을 잘 안다면 나에게 지금 이럴 수 있겠니.)
난 몽골 문제로 보자고 한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사람이, 그것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나올 때부터 이렇게 될 때 포기할 생각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내가 싫으면 포기하겠다고....
난 그 말에 고맙다고도, 미안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붙잡을 수도 없었다.
침묵할 수밖에.
깊이 감정이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마도 거절할 것 같았단다.
하지만 정말로 적은 확률이라도 생각하긴 했단다.
난 그 1%라도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너를 정말로 이해해 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네가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받은 상처를 네가 온전히 모두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고....
그래, 정말로,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 글쎄. 정말 솔직한 이유로는, 너랑은, 난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야.
........... 난 네가 아쉽지 않고, 넌 날 버리고서야 내가 아쉽다는 걸 깨달은 거고.
누가 보아도 내가 왜 너와 사귀는 지 의문스러워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넌 날 그런 행태로 홀대했지.
난 더이상 너란 사람에게 미련을 가지지 않았어.
신경쓰고 마음 아파 하는 시간 조차 쓰레기같았기 때문에.
그래도, 그랬던... 사이였는데..
그런 대답을, 아무리 참아도 매몰차게밖에 들릴 수 없는 말을 하는 내가 나도 좋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더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잘 가라고 했어.
그 사람이 마지막 선물이라고 준, 음료수 한 병에 고맙다는 말도 못 했다.
마음이 이상하기도 하다.
난 정말 섬세한 공감의 동물이기 때문에 마음먹고 이입한다면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가 않다.
사실, 내가 얼마나 한 인간에게 큰 상처를 주었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써 내가 받은 상처를 보상받을 수 있을까.
....... 나는, 정말로 다른 도리가 없어 이렇게 하고 있다.
더이상 나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만 이해하다가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나를 지키려는 최후의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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