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everydaylife2009. 9. 15. 01:10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그래, 문화적 차이겠지.
그래서 내가 허용을 못하는 거야.
내가 만약 처음부터 그런 악장 밑에서 배웠다면 나 역시도 그랬을지 몰라.


혹은, 음악을 할 때 혹독하게 배웠었기 때문에 더 그런 거야, 당연히.
혹독한 과정이 있어야 즐거움도 있는 법임을 온 몸으로 배웠어서.
음악의 길에서 겸손함을 잃는 순간 스승으로부터 얼마나 큰 질책을 받았었는지.
조금의 칭찬을 받았다고 우쭐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었고,
가장 격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해서 좌절해서도 안되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후배들을 보면 혼자 성질이 난다.
그래, 권력, 이라고 하기엔 웃기지만,
아무튼 월권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짜증이 치민다.
나머지 놈들도, 실력이 안 되어서 그렇지 실력만 되면 그럴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악장이 실력이 없어서 그래.
진짜로 미안하지만, 나도 뭐 딱히 잘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답답하다.
악장이라는 거, 나는 꼬꼬마 때 진짜 대단한 걸로 알았다.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만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였다.
그도 그럴 듯이 역대 악장님들의 전적은 화려했다.
정말로 대단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조원은 항상 겸손해야 했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감히 차기 악장이니, 그런 소리 입에도 못 꺼냈다. 
우리 기에서 가장 실력이 낫다고 평가받고 있는 나도,
2학년 초까지도 내가 악장이 된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선배들이 나보고 악장을 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고 술자리에서 말씀해 주셨을 때,
난 몸둘 바를 몰랐고 좋아해도 되는건지 부끄럽기도 했었다.


1학년들은, 악장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아무나, 웬만하면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혹은, 지금 악장보다 자기들이 사실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한 구석으로는...
선배고, 실질적 지위가 있으니 이놈들이 말은 직접적으로 안 해도.
간접적으로 충분히 보인다.
아무나 일어나서 악장도 아직 하지 않는 지휘를 하는가 하면,
자기들끼리 악장감을 뽑기도 하고,
메트로놈에도 완벽히 못 맞추면서 지휘를 해 달라고 하기도 해.
심지어는 이런다. '야, 그냥 악장 없이 하자.'
.......... ...................................................................


내가 1학년 때는 상상도 못하던 사태다.........
우리 동기 중 누구도 이런 말은 감히 못 했다.
이런 행동도 감히 못 했다.
조원으로서 착실하게 연습했을 뿐.
가장 막내 기에서, 악장은 무슨, 악장은 절대적인 선배들이나 할 수 있는 신성한 자리였다.


합숙 때는 그래서 내가 많이 다그치고 잡기도 했다.
자세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서 다리를 꼬고 앉아 남의 곡이나 어설프게 흉내내는 꼴을 곱게 보기 힘들었다.
악장이 그걸 못하니, 선배로서 나라도 그런 자세를 지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기들은, 내가 후배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거나 연습을 허투루 하는 태도를 곱게 보지 않자
그걸 꼭 그렇게 대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시각도 제기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생각해도 보았지만, 확실히 잡아주는 선배와 풀어주는 선배가 공존해야 하는 건 진리였다.
어느 한 쪽으로 가서는 절대 동아리가 바람직하게 굴러가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어느정도 보수적이라 불리는 그런 편에 선 사람이라 그런지 괜한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난 이 사태가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


악장의 권력이 바닥에 구르고 있다.

악장은 아무나 하는 것.
악장은 막내인 '나'도 할 수 있는 것.
솔직히 악장보다는 내가 낫다는 생각.
후배들의 속마음이다.

선배가 프로그램 곡을 연습하고 있는데 버릇없이 따라치는 행동.
그런 행동으로, 나도 선배 따위가 하는 것 정도는 그냥 이미 할 수 있어요,
선배가 힘들어하는 곡 나는 이렇게 쉽게 쳐요, 하고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그때 선배가 어떤 기분이 들 지, 자기 행동이 어떤 속마음을 드러내는지 모르는걸까?
솔직히 제대로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운지만 재빨리 짚으며 소리의 질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스케일,
그런 스케일을 후배들의 동기들은 '실력'이라고 칭송하며 악장감을 운운한다.
답답하고, 느껴서는 안 될 왠지모를 모멸감까지 느낀다.


처음에 괜히 싫었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놔두면 피곤해지게 만들 사람들이었기에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싫었던 거다.
그런 태도를 어떻게 너그럽게 받아주어야 하나?
응, 잘하는구나, 나보다도 잘한다, 라고 띄워주며 웃어야 하나?
그리고 악장이 돼? 그 바닥에 구르는 권위로 어떻게 악장을 해?


하, 또 하나 있구나.
진정한 음악적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절대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걸 인정하지 않는 무식하고 까다로운 동기까지, 이번에 휴동을 깨고 들어온다.
내가 악장으로 지휘하고 있을 때, 동기라는 이유로 얼마나 끼어들어서 나대려나?
혹은 기분 나빠하려나.
오디션 때 자기보다 실력이 나아졌다는 이유로 내게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속 좁은 녀석,
아, 진짜 갑갑하다.


악장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과 인격이 함께 해야 진정한 악장이다.
첫 악장으로 유순하기만 한 악장을 만난 일학년들은 제 잘난 맛만 알고 하늘을 날고 있다.
(물론, 우리 조 녀석들은 그렇지 않지만. )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행복한 1학년들은 정말로 기타를 꽤 잘 치고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거다.
악장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사태는, 악장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야.
그건 너무나도 명백해.
그리고 나도, 기존 악장님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실력이 부족해.
당연히, 부족하다 못해 발끝에도 못 미치지.
땅에 떨어진 악장의 권위를 다시 잡으려면, 내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탄탄한 실력을 기반으로, 다시 질서를 잡아야 한다.
진정한 포스를 가진 악장이 예전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회복해야만,
앞으로도 우리 동아리가 잘 발전해 갈 수 있다.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 없이 좋을 대로만 흘러간다면 망할 수밖에 없어.

악장 권위가 바닥을 구르는 이 바닥에서 악장이 된다는 것이 참 싫은 일이지만,
(난 악장이 되는 순간은 정말 대단한 순간으로 생각했었다. 엄청난 자리인 만큼 그건 당연했다.
악장이 되는 그 순간은 정말 황홀할 것 같았다. 그러나 ... 때문에 나의 그 순간이 망가져 버린 것 같아서 속상하다.
물론 실력을 이 악물고 쌓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
그래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믿음을 바탕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예전 악장님들처럼, 실력을 가꾸고, 진정한 리더가 되어야지.
방법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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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