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everydaylife2009. 12. 29. 00:53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그 일에 대해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그저 혼란을 피하려고만 하고 있었어서. 참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힘들이지 않고 외면하면 되었다.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늘 그런 태도로 피해왔듯이. 아무 감정도 갖지 않으면 되었다. 걱정하지도 않았고, 언제쯤 하면 될 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저 누워서 정신없이 다른 세계 속에 살 뿐이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무엇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똑바로 쳐다봤었다. 그렇게 현실을 만나고, 밤을 새며 현실에 괴로워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직시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다른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런 경우-, 잠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그저 피하고 다른 일들에 몰두하는 것. 내가 힘들여 싸우지 않더라도, 시간이라는 약, 망각의 힘은 나의 적을 알아서 어느 정도 약화시켜 놓는다고 믿었기에.


하지만 이게 완벽한 약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힘이 약해진 나의 적들은, 힘이 약해진 것처럼 보일 뿐 어쨌든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존재했다. 내가 싸워서 약하게 만든 적들은 세월이 지나면 내게 우호적으로 변해주었지만, 내가 피하는 사이에 잠시 낯설어진 적들은 생활 곳곳에서 문득문득 만날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주며 날 놀라게 했다. 나는 네가 누구냐고, 고개 돌려보지만 나란 사람 천성이 연극이나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절대 숨길 수가 없다. 표정엔 속까지 있는대로 다 드러나고, 나의 적은..... 그 힘이 어느 정도이든 언제까지나 적일 뿐이었다. 그들은 결코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와 싸워본 적이 없었으므로.


오늘에서야- 무심한 척 하며- 현실을 마주했다. 무감각하게, 때 지난 현실을 직시했다. 때가 지났으니 이건 힘이 약해진 현실이야, 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그러다-  이, 내 사랑하는 생의 파편을 주워담으며-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나를 외면할 수는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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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i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