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08년의, 나의 가을. :)
1.
몹시도 추운 초겨울 아침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체육관까지 갔다가 기숙사로 일찍 돌아왔어.
언 몸을 살살 녹이면서 밥 먹을 시간을 기다리는데,
오늘은 언니를 기다릴 수 있는 날이라서 먹는 시간이 늦춰진거야.
배가 많이 고파서, 차가운 창문 틈에 놓아뒀던 단감 하나를 깎아먹었어.
찹찹한 것이, 아주그냥 노긋노긋하게도, 까슬대던 목구멍을 쓰다듬는거야.
청량감으로 맑아진 눈!
그렇게 단감을 먹으며 교육의 목적과 난점 11장, 제도의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읽어내려갔지.
2.
침대에 누워 잠시 쉬는데, 밥 먹으러 가자는 문자가 왔다.
춥다고 온 몸을 옹송그리고 들어오는 룸메를 보고, 나도 두꺼운 니트 코트를 걸치고 나갔는데,
아.. 정말 온몸으로 파고드는 찬 공기!
그리고, 눈앞에서 나에게로 와락 달려드는, 눈부신 늦가을의 화석-
아름다웠다.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가장 진하고 깊은 노랑,
가장 밀도 높고 그윽한 빨강,
가장 성스럽게 짙은 녹빛..,
성숙한 갈빛, 모자란 듯 충만한 물기,
잎, 잎, 하나하나마다,
바람이 어루만져 조각하고
가을햇볕이 쓰다듬어 채색한,
.. 가을을 거치며 지켜본 어떤 단풍잎들보다도 아름다운,
잔-뜩 무르익은 늦가을, 마지막 가을의 향연이 향기롭게 깔려 있지 않겠어.
차가워진 공기탓에 더욱 살갑게 옷속으로 스미는 햇'살'에 간지러워하며,
그 햇살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깊이 성숙하여 더욱 아름다운 늦가을의 마지막 작품을 만끽했더랬다.
아뜩할 정도의 그 미감에,
잠시 우두커니- 섰다가, 옆에 선 친구를 끌어안았다.
- 이따가, 카메라 들고 나와서 마지막 가을을 찍어야겠다.
그리고, 안녕, 하고, 떠나보내야지, 나의 마지막 가을을. :)
3.
오늘따라 점심 급식은, 퍽도 겨울스러웠다.
김이 물큰물큰 솟아오르는 두부랑, 김치.
따끈한 설렁탕이랑, 김말이.
내가 두부랑 김치를 왜 이렇게 좋아했는지, 오늘 문득 깨달았다.
포근해서 그래, 두부 김치를 먹으면, 어릴 때가 생각나서.
어릴 적 여수에 살 때, 우리 아파트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두부장수 아저씨가 트럭을 끌고 오셨다.
따끈따끈한 손두부를 사라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엄마가 쥐어주시는 지폐 몇 장을 들고 가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큼직하고 투박한 손두부 한 모를 안아 오곤 했다.
넉넉하고 푸근한 두부를 탁자 가운데 놓고,
엄마가 김장독에서 꺼내다 주신 김치를 옆에다 두고,
도란도란 즐겁게 얘기하며 그 뜨끈한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던 어린 날이 기억나.
그리고, 눈이 잔뜩 내려 하얗게 되어버린 할머니의 기와집 마당을 바라보고 있을 때,
데워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들고 들어오시던 엄마와 할머니도.
공부하기에 퍽이나 좋은 날씨인 겨울,
교복 치마 차림에 무진장 커다란 목도리를 둘둘 감고,
종종대며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도,
따뜻한 자습실에서 잠시 나와 포장마차에서 사먹던 튀김이나 떡볶이가 또 어찌나 행복한 맛이었던지.
온풍기 바로 앞의, 조용한 자리에 친구와 겸상하고,
설렁탕 국물로 몸을 풀고,
뜨끈한 김이 물큰물큰 오르는 두부와 알싸한 김치,
향수 가득한 김말이를 먹으면서..
겨울이 주는 포근한 미감에 한참동안이나 빠져있었더랬다.
4.
가을이 가는구나,
그리고,
겨울이 오는구나,
왔구나,
나의 겨울이,
사랑스런 나의 겨울이 왔구나.................
Introduction to sunburst.. 가, 유난히도 아름답게 들리는 겨울의 초입,
차가워서 더욱 포근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