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회화학원의 주말 프로그램에 참석하면
다니고 있는 영어회화학원에서 주말에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 중 하나가, Service라고, 교회에서 보는 예배를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보는 것이 있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라, 예식의 모든 절차는 2개 국어로 동시에 진행된다.
종교를 가지든 가지지 않았든, 다른 문화를 접하고 영어를 공부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Service말고도, Friday Vespers, Club Activities 같은 다른 프로그램들도 있다.
어찌 되었건, 이 모든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고 나면 주중에 출석하지 못한 정규수업에 대한 make-up이 이루어진다.
..... 사실상의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주말 프로그램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또 참여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Service 이외의 다른 모든 주말 프로그램들도, 사실 종교적 색채가 매우 짙다.
어떤 이야기로 활동을 시작하든, 그 논의의 끝은 기독교의 교리로 마무리된다.
난 독실한 성도가 아니고, 게다가 기독교가 아니라 천주교를 믿었'
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이 아주 이상하게 여겨지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활동들에 참여하는 것은 다소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기만 하다.
'How do you think God encourages us?'
와 같은 질문에 나같은 사람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긍정함을 전제한 질문인데,
나는 아직도 이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져 오는 걸.
증명되지 않은 존재를 믿는 것에 대하여
초자연적인 힘, 그래, God.
사실, 과학의 입장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UFO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UFO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 상식적으로도 터무니없지 않은가.
그보다도, UFO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드는 근거는 이런 것이다 :
I guess I'd say if it is just us... 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 by Carl Edward Sagan.
경험주의에 근거하고 조작적 개념을 강조하는 과학의 방식과는 다른,
'믿음'의 문제.
나는 근대 이후의 사람이고, 그 영향을 받아와서 그런진 모르지만, 다원주의적 사고를 지향하는지라-
삶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두 영역은 당연히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신의 존재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기보다는,
이 세상을 굴려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 인간이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나는 과학에 열광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시도, 그 철저한 논리의 첨탑이 그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또 동시에 유연할 수가 없다.
나는 생명과학을 공부하다가 신의 섭리를 느끼며 진저리치고,
아름답게 연결된 분자의 구조를 들여다보다가 'being'과 '자연의 흐름'에 전율하곤 한다.
진화론에 감탄하다가도 그 안에서 '진화의 process'를 굴려가는 초자연적 힘을 발견하면서 아연해진다.
생명의 탄생을 주제로 쓴 에세이를 읽으며 감탄하다가,
'결국은 생명도 아무것도 아니다'란 뉘앙스로 마무리되는 그 글의 결말에 실망하고 조목조목 다시 따져나간 일이 있다.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별것 아닐지 모르는 입자들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결합해 일련의 '생'을 창조하고 '삶'을 이루며 'the world'를 존속하는 과정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신비하고,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우며 놀랍기만 하다.
어쨌든, 내 입장은 이렇다는 것인데.
...... 사실 작은 불만을 투덜투덜 소소하게 털어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핀트가 다른 쪽으로 흘러가 버려서,
내가 원래 하려던 얘기를 다시 꺼내기가 좀 민망해졌다. =ㅅ=;.......
;;.. 그냥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 보면.
신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
그래, 나는 종교에 대해 이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사실 성경 말씀들, 아름다운 구절들이 참 많다.
그리고, 난 불교 사상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들의 사유, 성인들이 추구했던 진리, 철학, 그것들은 나를 깊은 통찰의 길로 이끈다.
학문 하는 이유를 항존주의에서 찾는 나에게는,
종교와 교리는 또 하나의 관점이며 다른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눈이다.
...... 교회 사람들이 믿음으로써 행복해하고 즐겁게 사랑을 나누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 참 보기 좋다.
그들은 정말로 '구원받았'으며, 그래서 그렇게 행복한지도 모른다.
나도 알고 있다, 그 믿음이 굳건할 때 얼마나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가를.
나도 한 때는 이들의 모든 말을 굳게 믿고, 믿지 않는 이들을 안타까워했을 적이 있었으니까.
믿는 자들은 행복하고, 매사에 활기가 있으며, 이웃을 위해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존재,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신의 은혜를 느끼고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신의 뜻에 맡기고 욕심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래, 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 역시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는 내게 일어나는 어떤 절망적인 일도,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믿고 있다.
내게서 모든 걸 송두리째 앗아갈 것 같았던 순간들이 날 죽일듯 괴롭혔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렇게 되뇌게 되곤 한다. : 그 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난 지금 이 길로 오지 못했을거야.
그래서 난, 모든 것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보려 하고,
이제는 굳이 '좋은 점만 찾아야지', 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고 패턴이 습관화 되었다.
따라서 난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고있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만끽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고있다.
어떤 잘 된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내가 잘나서라고 합리화하기보다는,
그것은 그저 내 삶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는 기회가 될 뿐이라 여기고,
나는 그 순간이 주는 즐거움과 흥분에 감사하며 역시 양껏, 기쁘게 만끽할 뿐이다.
........ 단지, 그들이 단결하고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고자 행하는 예배나 미사에 참여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처럼 성경을 공부하며 다른 이(신)에게 내 삶을 완전히 맡겼다고, 나의 자아는 없다고 믿지는 않을 뿐이다.
'Believe it or not but life is not apparently about me anyways,
oh well, goodbye, don't cry so long, self'
라고, 목청껏,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하지 않고, 그저 음악의 아름다운 beat와 melody를 즐길 뿐이다.
신과 종교집회 - What do you think of religious gatherings, God?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는 신이시라면,
이 세상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창조하신 신이시라면,
당신의 모든 아들 딸들이 죄다 당신을 굳게 믿을 것이라는 아집을 가지진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을 믿고 따른다는 명목으로 성당이며 교회에 꾸준히 나가지만,
은혜 속에서 한 주를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매번 다짐해 놓고 이내 방탕하고 게으른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 중에는 어려운 순간에만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어 매달리기는 이들도 있다.
그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해 범죄집단급으로 돌변한 대순진리회같은 단체들은 어떤가.
신이시라면, 인간들이 당신을 위해 지은 성전에 꼬박꼬박 나가는 것이 기특하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특별히 편애하시거나 혜택을 주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고 믿음만을 무기로 게으름에서 벗어날 생각을 않는 이들을 어찌 '구원'하고 싶으실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테다.
반대로, 종교집회에 꾸준히 참여하지 않고,
당신의 존재를 그들의 존재를 지워가면서까지 절대시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들이라도,
그의 뜻에 맞게 당신의 세상에서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그들을 당연히 사랑하실 것이다.
태초에 그가 세상이 움직이게 하였을 적에,
전지전능하신 그는 오만가지의 다채로운 성격을 세상에 불어넣었을 것이다.
당연히,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도 존재하고, 신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기에 그들을 당연히 보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신의 논리는, 미안하지만, 끔찍한 모순이다. -_-...
내가 예배와 다른 주말 프로그램에서 어색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 접점에서였다.
신의 논리가 정말로 이럴 리는 없는데,
그를 해석하고 믿음을 유지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은 종종 신의 의도와 어긋나곤 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불행할 것이란 뉘앙스를 주는 설교.
(상술했듯. 어디, 이 말이 옳다면, 그렇게 차별하는 것이 어찌 신의 논리인가.
성경에 믿는 자 구원받으리라는 말은 있으나, 역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던가?...
글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것 참.. 성경을 누가 썼는지, ...)
낫지 못하게 하는 질병이 없으시다는 신.
참,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참으로 갖다 붙이기를 잘 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단 생각마저 하게 했다.
질병에 걸렸으나 믿음의 힘으로 긍정적인 생리 변화를 일으켜 완쾌된 경우엔,
그것이 긍정적 사고로 긍정적 생리작용을 일으켜서 완쾌된 것이든,
신의 기적에 따라 완쾌된 것이든, 어쨌든, 신의 은총이라 하겠지.
하지만 낫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에도, 그것 역시 신의 섭리이고 신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 말한다.
사실, 그렇게 설명하면 어떤 것도 신의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믿음'의 문제인 이 명제들.
여기에 대한 신념을 굳게 하고자
믿는다는 자들은 매주 모여 공부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고,
이탈하지 않게 도와주십사 기도하고, 그들의 모임을 존속시킬 돈을 '헌금'이란 이름으로 매주 모은다.
... 그리고, 그 돈을 모아 교회를 유지하는 것도 신의 은혜라 말하며, 또 믿음을 강화할 기회로 삼는다.
.... 나는, 그 모임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구성원도 아니고,
그것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이기보다는 1차적으로 교회의 운영과 유지에 사용된다는 걸 알기에
굳이 헌금을 내지 않았고 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째, 헌금을 내는 시간에는 봉투를 꺼내지 않는 내가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그 강력한 믿음의 고리에서 묘한 입장 차이로 어긋나 있는 나.
이것이 죄가 아님에도,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데도,
잘못한 사람인 양 이상한 죄책감이 느껴지게 하는, '정말 묘한 논리'들이 날 압박했다.
..... 모든 의도가 좋았지만,
난 그 압박과 죄책감이 싫어서,
다음 주엔 Service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은 좋았지만,
나도 물론 정말 행복하지만,
그들과 완전히 똑같은 이유로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색하기만 하다.
........ 휴. 오전은, 정말 생각이 복잡해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신이 만든 이 세상의 신비함을 탐구하고자,
생물학과 심리학 책을 들여다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