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이 힘들다보니, 계속해서, 다른 일에 몰두하게 된다.
작년 가을 무렵부터 그랬었던 것처럼.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닥치는대로 일을 찾고 만들어내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로 미친듯이 공부하고 일하고........
해외로 교육봉사를 하러 가려고.
일본 교육대학이랑 학술교류하는거, 거기로 가려고도 생각해봤는데,
아냐, 일본어에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몸으로 부대끼는, 진짜 '체험'을 하고 싶었고,
럭셔리하게 공주처럼 앉아서 즐기다가만 오는 그런 해외 체험은 달갑지 않아서 관뒀다.
중국, 태국, 몽골 등지로 떠나서 한인 2, 3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봉사를 하고 문화탐방도 하는,
그쪽으로 맘을 결정했다.
그것도, 중국은 맘만 먹으면 쉽게들 갈 수 있을테니
태국이나 몽골, 특히 몽골로 가려고 맘먹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접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일테니...
다만, 태국의 경우 초등생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몽골은 사범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내 전공을 감안하면 초등생들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몽골이라는, 내게 너무나도 생소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 탓에 많이 주저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비율이 늘고 다양한 학생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초등교사의 특성상,
캄보디아의 초등생들, 그것도 한인 2, 3세들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많은 걸 느끼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다른 나라의 공기를 한 번도 마셔보지 못한 내가 국제적 감각으로 세상을 대하게 하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터-
그리고, 사전에 선발된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정기 교육도 받고 모의 수업도 한다는 것도 맘에 든다.
학교 공부, 교사라는 '안정직'에 연연하지 않고, 청년다운 패기와 열정, 넓은 시야를 가진 좋은 사람을 많이 알게 될 거라는 것.
일본의 경우는 안 그렇잖아.
그냥, 열흘간 아는 사람들끼리 각자 관광하다 오는 느낌. . .
물론 이웃나라의 교육을 눈으로 확인하고 배우고, 홈스테이를 하고 그곳 대학생들과 교류하며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일본어 실력 향상을 노리는 이들이 많이 신청하는 만큼, 난 정말 내 그릇만큼만 체험하고 돌아올 것 같아 아쉽다.
다음해 방학때 우리 집에서 일본 학생을 홈스테이 시킬 기회를 갖는다는 점은 탐나지만, . . .
대학원생일 때 노려보려고. ㅎㅎ
그리고, 애국심,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 한 번도 진하게 느껴보지 못한 나다.
전통문화 관련 기술이나 특기를 가진 사람을 우대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데에, 반성하게 되었어.
다른 나라에서 한인 2, 3세들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과 우리 것을 나누며,
우리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어떤 건지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예감.
이런 의미에서도 참 가치있는 체험활동이다, 싶었다.
내가 초등교육을 전공하기에 좋은 점이 여기 하나 더 있구나.
다른 과 학생들이었다면, 정말 이럴 때 할 것이 생각이 잘 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체육실기2 시간에 전통무용을 배운 적이 있다.
강강술래와 소고춤.
이런 데에 이렇게 의미있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와이즈에서 활동을 해도 할 수 있고, 이런 곳에서 수업할 때도 할 수 있고,
초등교육과는, 정말 만능이다. ㅎㅎ
어디에 끼어도 할 말이 있고, 어느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도 대화가 가능하다.
또한, 예비교사의 역량으로서도 의미있는 활동이구나 싶다.
이번 학기의 목표들이 이런 거였지.
발표 활동,
리더십.
5월 내내, 그리고 방학까지도,
난 끝없이 발표하고, '수업'하고, 사람을 다루게 된다.
모의 수업이 3회 이상 있고,
중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학 수업을 실제로 하고 오게 된다.
정말로 이건 '파견 교사' 자격으로 가는 거라서- . . .
남은 대형 발표도 2개,
소형 프레젠테이션 하나.
의도한 바이기도 하지만, 난 어쨌든 많이 자랄 것이다.
내가 만든 바운더리에 갇혀있기 싫어서, 마주하기 두려운 것들에 나를 잔인하리만큼 마구 노출시키는 중이다.
언젠가는 껍질을 깨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응. 사실, 시험해 보려는 의도도 없지 않다.
목표가 생겼으니,
이제 중간고사가 끝나면 영어공부에도 열을 올려야지.
퇴사날 바로 출국하니까, 그전까지 내 방에 있는 영어책들을 아주 사랑해주겠다.
목표는, 역시 좋은거야. ㅎㅎ 의욕이 마구 생기는 걸.
해외로 여행갈만큼 집안이 넉넉한 것이 아니라서 매일 마른침만 삼켜야 했던 나날들.
나는 국비로 유학갈 거라고, 습관처럼 바득바득댔던 날들이 떠오른다.
응. 난, 나라의 혜택을 있는대로 누리면서 살거야.
우리 학교에 있는 동안, 다 빼먹으면서 살거야. ㅎㅎ
대학생일 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 내 역량껏 다 누리면서.
시험기간인데 9장 분량에 육박하는 수업계획서와 연수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압박.
하지만 가만 앉아있는 자들은 기회를 잡지 못하는 법.
부지런히 눈뜨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음... 그러고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일어난 모든 일들은, 현재 상황에서 보면 다 시기적으로 기가 막히게 일어났었다는 거.
난 작년 여름방학 때, 학교 프로그램들을 이렇게 찾아서 하지는 못했지만,
영어공부를 아주 마음먹고 '시작' 했었다. 시작이 반이었다.
그 때 영어 공인성적을 땄고, 그때 땄던 성적은 웬만한 연수며 해외체험에서 대체로 인정할 정도의 레벨이었다.
이번 해외봉사에서는 어학능력 뿐 아니라 직전학기 성적도 보는데,
또한 직전학기 성적이 4.42 /
4.50 아닌가.
이래저래, 많은 부분들에서, 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참 촘촘하게 잘도 사용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다- 재수하면서 얻게 된 선물인 것 같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놓치는 시간이 얼마나 아쉽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 맘아픈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아서.
아름다운 순간 순간들, 찰나가 그립고 아쉬워서 젊은 날의 향기와 행복을 최대한 누리고 극대화하는 법을 스스로 부대끼며 찾아나서는 것. 이 피는, 정말로, 20여년 간 키워온, 당장이라도 터질 듯 꿈틀대던 꿈을 완전히 접고 스무 살의 1년을 고통으로 보내야만 했던, 그 때 그 시기의 선물이다.
........ 마음이 아파서, 괴로움을 잊게 해 줄, 또 이렇게 다른 생산적인 일들에 몸을 던지는 거 ........
알고 있다. 이따금씩 또 맘이 저려올 것이고, '이런' 내가 씁쓸해지기도 할 거라는 걸.
하지만 또 알고 있는걸.
이렇게 자랄 거란 걸.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된 일이라는 걸.
먼 훗날에 지금의 날 바라보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날 바라보며 하는 말처럼, 또-
'지금의 내 모습'을 위해 그 때 저렇게 되었었구나,
하며 미소짓게 될 거라는 걸.